대학가 '뒤풀이' 줄고, 종업원에겐 '존칭'…#미투가 바꾼 일상

뉴스1 제공  | 2018.03.11 06:05

술자리는 1차만…'누나·예쁜이' 막말 손님 사라져
'자기성찰'에 남녀구분 없어…"조금씩 변화 중"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김세현 기자 =
지난 8일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경기전 앞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 전북여성대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18.3.8/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면서 우리 일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해마다 매년 음주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새학기 대학가에서는 뒤풀이 술자리가 확 줄었고, 손님의 '갑질 논란'이 반복됐던 서비스업계에서는 종업원에게 존칭하는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대학생 박동화씨(24)는 "개강 첫주에 축구동아리 회식을 제외하고 술자리를 한번도 갖지 않았다"며 "동아리 회식도 평소에 진탕 마셨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간단히 맥주만 한잔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새학기 첫주에는 항상 학교 주변이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는데 올해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 같다"며 예년과 다른 대학가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한 신모씨(20)는 "신입생환영 때 선배들이 남자 동기들을 불러 오해 살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요즘도 가끔 2차(술자리)를 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보통 1차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편"이라고 했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학생회나 학교 자체 차원의 성폭력 예방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학과 환영식에서 성평등 교육을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교수·강사가 대학 강단에서 '미투 운동'을 언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개강 첫주 대학 캠퍼스에서는 학생회와 학회 등 단체 차원에서 게시한 미투 운동 관련 대자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피해 당사자로 직접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미투글이 게시된 곳도 있었다.

대학원생 박모씨(29)는 "이성 친구에게 최근 페미니즘 에세이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며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거북했지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차차 읽어보려 한다"고 했다.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성폭력 저항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며 시민들에게 하얀 장미를 나눠주고 있다. 2018.3.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비스업 종사자들 "미투 이후로 성희롱 언행 줄어"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일하며 고객의 성희롱성 언행을 참아야 했던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은 미투 운동 이후 '악질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초동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모씨(26·여)는 "담배 종류가 너무 많아 못 찾을 때면 아저씨 손님들이 화를 내고 재촉하는 일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며칠 사이에는 (담배를 찾을 때) 다 존댓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아직은 사회 분위기가 무서워서 그런 듯하다"며 "미투 운동이 우리 같은 편의점 종업원도 존중하는 문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른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모씨(23·여)는 "주변에 회사가 많다 보니 손님 중에 자기 자랑을 하며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고 명함을 주고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 한달 동안은 없었다"며 "자신들이 뭐라고 (명함을) 주는지 추근대는 게 싫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하는 위모씨는 "여자 종업원을 '아가씨', '예쁜이', '누나'라고 부르는 중장년 남성들이 많았는데 미투 운동 이후로 찾아볼 수 없다"며 "동료들 사이에서도 '너 얼굴 부었는데 어떻게 하냐', '오늘 머리 감았냐' 이런 농담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김지수씨(23·여)는 "술에 취한 취객들이 단체로 와서 '예쁘다', '어디 사냐'면서 웃는 게 악마같이 보였다"며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없어져 다행"이라고 했다.

2018.3.8/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무심코 한 말도 성희롱 아니었나?"…남녀 구분 없이 자기성찰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변화 움직임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자신이 무심코 했던 언행이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주진 않았는지 자기성찰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한솔씨(27·여)는 "미투 운동 이후로 여자나 남자나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여자끼리 연예인들 외모 평가를 하다가도 '조심하자'며 멈추곤 한다"고 했다.

박정원씨(26)는 "자신은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남자들이 깨닫고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도 무심코 성희롱이나 성차별적 발언을 하진 않았나 고민한다"고 말했다.

가족 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이하늘씨(25·여)는 "아버지가 회사에서 '성인권교육'을 받은 뒤로 (딸의) 눈치를 보신다"며 "'미투'가 여권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용어가 된 것 같아 좋다"고 전했다.

장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실장은 "여성에 대한 멸시와 폄하를 일삼아 온 사람들이 미투운동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나도 모르게 미투 위반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확장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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