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만나자. 빨리 오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회의실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미국측 인사들에게 최근 방북성과를 설명하던 8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쯤, 이같은 내용의 전갈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왔다.
당초 정 실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면담은 다음날 예정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 빨리 보자"고 한 것이다. 정 실장은 이날 오후 4시15분쯤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 오벌오피스로 향했다. 그리고 45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전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솔직하게 얘기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물론 과거의 실수가 되풀이 안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며 "(기회를) 미국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위원장이 가능한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주변 참모들을 돌아보며 "그것 봐라. (북한과) 얘기를 하는게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좋다.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북미정상회담 시기로 '4월'을 언급했다. 북미정상회담도 즉시 추진하자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에 정 실장은 "우선 남북이 만나고 난 뒤 그 다음에 북미가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의견을 받으며 남북정상회담(4월말) 직후인 5월로 북미정상회담 시기가 맞춰졌다. 탐색전을 최소화하고, 곧바로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덕에 북미정상회담 추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발표도 정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틈도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마친 직후 2시간 동안 백악관에 위치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방에서 합의문을 작성했다. 합의문을 쓰고, 브리핑을 하기 직전에야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었다. 청와대와 백악관을 연결하는 이른바 '시큐리티(보안) 라인' 전화를 이용했다.
발표를 정 실장이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에게 "여기까지 온 김에 오늘 논의 내용을 한국 대표 이름으로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이 정치적 부담을 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중재자' 역할을 한 한국을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북미대화에 적극적인 것은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가능한 빨리"라며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기 선택을 위임했다. 특히 지난 5일 정 실장 등 대북특사단과 평양에서 만나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았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 대통령이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예상보다 더 강력한 대화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는 대북특사단에 "실무적 대화가 막히고, (북측 실무자가)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면 (문재인) 대통령하고 나하고 직통전화로 이야기하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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