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만 오면 '아찔'…여전히 위험천만 점자블록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이영민 기자 | 2018.03.09 05:50

실내 점자블록 실외 미끄럼 기준 낮아 "시각장애인도 피해 걷는다"

8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앞 점자블록 위에 미끄럼 표지가 세워져있다(왼쪽), 같은날 영등포역 지하도의 점자블록에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매트가 덮여져 있는 모습.(오른쪽) / 사진=이영민 기자

"어이쿠!"

비를 피해 지하철 입구로 들어선 50대 남성이 좌우로 크게 휘청인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바닥에 설치한 점자블록을 밟다가 몸의 균형을 잃은 탓이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시민들은 점자블록을 피해 걷는다. 간밤 내린 비로 거리가 젖은 8일 오전 출근길 서울 영등포역의 모습이다.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점자블록이 오히려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다. 미끄럼 저항기준 강화로 안전성이 높아진 실외 점자블록과 달리 실내 점자블록은 여전히 저항기준이 낮아 안전사고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12월부터 실외에 사용되는 점자블록의 '한국산업표준(KS) 규격' 미끄럼 저항기준은 기존 20BPN(미끄럼 저항값)에서 40~50BPN으로 높아졌다. 눈이나 비가 올 경우 점자블록 표면이 미끄러워 보행자가 낙상을 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외와 달리 실내 점자블록은 여전히 강화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미끄럽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야 한다고만 권장할 뿐이다. 외부에 있던 보행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물 묻은 신발로 점자블록을 밟을 경우 미끄러지기 쉽다.

특히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 입구에서는 아찔한 광경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이날도 영등포역 지하에는 보행자 우산 등에서 떨어진 물기로 점자블록이 젖어 임시방편으로 매트를 덮어둔 상태였다. 시민들은 자칫 미끄러질 수 있는 점자블록을 피해 걷고 있었다.


얼마 전 영등포역에서 물에 젖은 점자블록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는 직장인 이모씨(32)는 "무심결에 걷다가 점자블록을 밟고 미끄러져서 허리가 완전히 뒤로 꺾여 한동안 고생했다"며 "젊은 남자도 위험한 상황인데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2호선 구의역에서 점자블록을 피해 걷고 있던 임유미씨(31)도 "점자블록에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줄 알고 일부러 찾아 걸으려다 미끄러진 뒤로 피해 다닌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블록을 찾아서 걷다가 넘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검토한 점자블록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이 설치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공시설인 지하철이 아닌 일반 건물의 경우 도기, 고무 등 미끄러운 소재로 설치된 곳이 많다. 이 때문에 정작 점자블록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도 비가 오면 점자블록을 피해 걷는 실정이다. 박인범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회장은 "눈이나 비에 상관 없이 물청소를 하거나 하는 상황에서 미끄러지기 쉬운 경우를 많이 봤다"며 "그래서 지팡이로 점자블록을 치면서 참고만 하고 직접 밟지는 않는 식으로 걸어다니도록 배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실내외 관계없이 보행자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수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갑작스럽게 실내의 모든 점자블록을 미끄럽지 않은 재질로 바꾸는 것은 많은 비용 부담이 들 것"이라며 "보행자 안전을 우선해 새롭게 짓는 건물부터 단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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