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우리 지사님'·'충남의 아들'이 패륜아로…들끓는 충남 민심

머니투데이 홍성(충남)=이재원 기자 | 2018.03.06 15:43

[the300]세대·이념 넘었던 '우리 희정이'…"인물 보고 표 던졌는데.." 허탈

충남도청 도지사실 앞에 비치된 안 지사의
추천도서 목록.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안 지사의 자서전과 함께 놓여 있다.

6일 오전 충남 홍성군 홍북읍에 위치한 안희정 충남지사 관사. 유리창은 깨져 있고,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이 주변 출입을 제한했고,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 30대 민주당 지지자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관사에 난입, 유리창을 파손했고, 용의자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관사 옆에서 만난 한 주민은 "꿈을 꾸는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몇몇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런다"며 "정말 정치공작의 가능성은 없는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성추행 의혹 폭로로 충청남도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세대와 이념을 뛰어넘은 분노와 배신감이다. 충남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안 지사와 가까울수록 배신감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특히 안 지사의 인기가 높았던 2030 세대의 충격이 컸다. 도청에서 만난 30대 김모씨는 "너무나 큰 배신감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안 지사는 보수 텃밭이었던 충남에 깃발을 꽂고 재선까지 성공하지 않았느냐"며 "당이나 이념이 아닌 안희정이라는 개인의 능력과 철학, 가치관을 보고 표를 던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안 지사라는 인물을 보고 표를 던졌다"며 "그만큼 안 지사는 충남에서만큼은 진보-보수를 뛰어넘은 사랑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 지사는 2010년 첫 당선때는 물론, 2014년 재선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보수 정당 후보들을 이기고 당선됐다.


중·장년층도 충격을 받은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홍성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다는 박희수씨(64)는 "대선과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도지사 선거에서만큼은 '우리 희정이'에게 표를 던졌다"며 "내 고장 충남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신뢰를 느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선 기간, 안 지사가 '충남의 아들'이라고 마케팅을 할 때에도 흐뭇하게 바라봤다"며 "그런데 지금 보니 부끄러운 패륜아였다"고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안 지사와 함께 일했던 충남도청 소속 공무원들도 허탈감을 호소했다. 반년 전 군청에서 도청으로 이동해왔다는 공무원 김모씨는 "군청에서 도청으로 이동해 오면서 업무에 생긴 큰 변화가 안 지사였다"면서 "민주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안 지사의 업무 방식에 많은 공무원들이 감동을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안 지사를 '우리 지사님'으로 부르며 많은 애정을 뒀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지난 5일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피해자 김지은씨 역시 안 지사를 '우보 지사님'이라는 별칭으로 등록한 바 있다. 우보(牛步)는 안 지사가 자신이 도정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할 때 즐겨 이용하던 '우보호시'(牛步虎視)에서 따온 말이다.

아직까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안 지사 개인에 대한 분노에 머물지만, 언제든 민주당과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태세다. 20대 여성 최모씨는 "탄핵 정국과 대선을 거치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당과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을 지켜본 뒤 지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것 "이라고 말했다.

분노한 도심(道心)과는 별개로 안 지사 측은 이날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사퇴 의사를 표명한 뒤 침묵을 유지했다.

충남도지사 관사 본채 유리창에 난 구멍,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 보도에 분노한 30대 민주당원이 6일 오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파손했다. /사진=이재원 기자



관사에서 10여분 떨어진 충남도청에서도 안 지사를 찾을 수 없었다. 5층에 위치한 안 지사의 집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만 집무실 근처 그의 흔적은 있었다. 도지사실 입구 벽면에 마련된 '도지사가 추천하는 책' 코너에서다. 두 줄 짜리 선반에는 안 지사의 자서전과 함께 미국의 여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 등 여성인권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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