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주' 노릇한 국가…이제라도 피해자 보듬어주길"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 2018.02.28 05:15

[the L] [피플] '미군 기지촌 피해여성 국가배상' 소송 대리 하주희 변호사

하주희 변호사(사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그때 나이 고작 15살, 부잣집 식모나 식당종업원 자리라도 소개받으리라 생각하고 직업소개소를 찾았다. '숙식제공'이라는 말에 따라나서 도착한 곳에서 어른들은 가짜신분증을 하나 쥐어주고 '일'을 하라고 했다. 그때 알았다. 그 일이 무엇인지. 1971년 그날 15살 향미씨(가명)는 '양공주'가 됐다.

37년이 지난 2018년 2월8일 서울고법은 "국가는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묵인하는 수준을 넘어 기지촌 내 성매매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했다"며 기지촌 여성들에게 정부가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가가 사실상 '포주'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수십년간 '국가'없이 살았던 수많은 향미씨들은 이날에서야 억울한 삶을 보상해줄 '국가'를 찾았다.

"이들이 '위안부'로 불렸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실제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 위안부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사용됐더라고요. '위안부'라면 성격은 명확해져요. 이들을 사용했던 사람, 위안의 대상은 미군이었던 것이고 그걸 만들어 준 것은 국가였다는 거죠. 정부가 개입한거에요."

'미군 기지촌 피해여성 국가배상' 소송 대리인단에 속한 하주희 변호사는 말했다. 하 변호사가 이들을 만난 건 2013년이다. 소송이 시작되기 전에도 기지촌 여성들이 어떻게 국가에 이용당했는지는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다만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다. 그사이 10~20대 여성들은 노인이 됐고 하나둘 사라졌다. 실제 1심에서 122명이던 원고는 2심에서 114명만 남았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8명이 눈을 감았다.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피해 여성들의 증언은 분명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고 각종 증거 자료는 대부분 정부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도 당사자들의 의지가 확고했어요. 말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얘기에 시작했죠."

1년간의 법적 검토 끝에 2014년 6월 소송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억울했지만 '순결'을 '목숨'처럼 여기던 시절을 보낸 이들이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았을터다.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본인의 경험에 대한 진술이 있어야 해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내 이야기'를 법원이 인정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렵죠. 피해자들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같은 피해를 입은 이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구나, 내 잘못 만은 아니구나 하는 인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조금씩 꺼내놓을 수 있었어요."

기지촌 안에서 여성들의 삶은 포주와 국가가 관리했다. 어떤 방식으로 든 일단 들어오면 나갈 수 없었다. 소개비, 가구비 등의 명목으로 빚이 쌓였고, 아무리 일을 해도 이상하게 빚은 줄지 않았다. 도망가면 잡혀와 맞았다.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포주에게 이들은 넘겼고, 손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포주는 소개비를 얹어 다른 포주에게 이들을 넘겼다. 그러면 빚은 더 늘었다.

보건소는 15살짜리가 22살이라 적힌 가짜신분증을 들고와도 성병검사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매달 2~8차례 성병 검사를 받고 보건증을 받아야 했다. 깜빡 잊고 외출이라도 했다가 불시에 검문을 당하면 보건증이 없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심지어 위안부가 아닌데도, 기지촌 안 여성들은 보건증이 없으면 끌려갔다.

끌려가면 값싼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정말 성병에 걸렸는지, 페니실린 부작용이 있지는 않은지 검사는 없었다, 최소 3일간은 갖혀있다가 성병이 없다는 확인을 받아야 나올 수 있었다. 당시에도 부작용이 심해 일반 의사들은 사용을 꺼려했던 페니실린을 맞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사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피해자들은 진술한다. 당시 보건소에서 근무했던 의사 역시 같은 진술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주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이들은 약에 중독됐고 건강은 망가졌다. 이들은 아파도 성병 주사와 마약인 진통제 이외에 다른 약은 얻지 못했다. 국가는 오로지 성병만 검사했다. 미군에게 옮겨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소송을 하면서 정부가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정부가 했던 일이고 모든 자료는 정부에게 있을텐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 이외에는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미국 자료를 찾아서 확인해야 했어요."

법정에서 정부측 인사들은 "안타깝지만 법대로 했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놓고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앉아라" "미군에게 서비스를 잘하라"고 가르쳤다. 또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치켜세우기도 했고, 지역구를 찾은 국회의원들은 "나중에 아파트를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법원 판결 이후 "스스로 돈을 벌려고 성매매를 한 이에게 국가가 왜 돈을 줘야 하느냐"는 비난섞인 목소리도 일부에서는 나온다. 하 변호사는 "선택 여부를 떠나 스스로 선택했다면 국가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어떻게 기지촌에 들어갔는지는 핵심이 아니에요. 확실한 것은 스스로 나올 수 없었다는 거죠. 전후 어리고 가난한 여성, 즉 사회적 최약자였던 이들이 정부가 허가를 내 준 직업소개소에 속아서, 인신매매를 당해서 기지촌에 들어가 국가 관리 아래 성매매를 하게됐어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 필요에의해 이용하고 버린 이들을 보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뉴스1


이들이 수십년 세월의 보상으로 국가에 요구한 돈은 1000만원이다. 이중 법원은 500만~700만원을 인정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보상하기에 턱없이 적은 액수다. 하지만 이 판결로 억울하지만 무엇이 억울한지, 왜 억울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이들은 무엇이 억울한지, 왜 억울한지 말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이제 "안에서는 달러벌이 애국자로 밖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삶을 살아온 것이 억울하다"고 소리내 말할 수 있게 됐다.

"기지촌 여성들은 일생을 손가락질 받으며 힘든 삶을 살아 왔어요. 그런데 그들의 위안을 받은 '구매자'는 어디에 있죠? 당시 기지촌 여성 교육에는 미군도 관여했어요. 미군 보건담당자가 기지촌 여성을 담당해 관리했을 정도였어요. 이제 구매자들이 스스로 입을 열 차례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죽기 전에 자신을 버렸던 국가의 사과를 받는 것, 그리고 이제라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수차례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없다. 지난해 7월에도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

"기지촌 여성 대부분은 가족이나 연고가 없어요.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들은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역사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에요. 이제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논의돼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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