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에 나오죠?"…미투 비웃는 '엑기스 영상'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2.24 05:17

성폭력·성폭행 콘텐츠 재미로 소비… "여성 대상화하는 현상 반영된 것, 국가적 교육 필요"

/삽화=임종철 기자
"실미도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간호사씬'(간호사가 군인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죠." "그 장면 몇 분에 나오죠?"

"한공주 성폭행 당하는 엑기스('진액'의 잘못된 말) 모음집입니다."

직장인 허모씨(30)는 최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그린 실화 영화 '한공주'를 구매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연관 검색어에 '엑기스'나 '몇 분' 등의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폭력 콘텐츠를 재미로 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의 경우 줄거리나 맥락, 담긴 의미 등은 고려하지 않고 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만 모아 스낵처럼 즐기는 식이다. 이를 공유·판매·소비하는 이들 모두 성 인식 부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머니투데이가 주요 영화 공유 사이트 등을 살펴본 결과 성폭력 콘텐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단 성폭행 장면 모음집 등이 문제의식 없이 공유되고 있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 영화 '한공주'를 검색했을 때 결과. /사진=포털 검색 결과 캡처
한 포털 사이트에 영화 '실미도'를 검색했을 때 결과. /사진=포털 검색 결과 캡쳐
일부는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 중 하나라고 주장하지만 대다수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영화 콘텐츠를 여러 번 구매했다는 대학생 A씨는 "해당 영화가 성적인 장면들 때문에 화제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편집본'이 있는데 용량이 적고 가격도 저렴해서 봤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신모씨(27)는 "영화를 보다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 피해자 감정에 이입해 눈물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런 부분을 좋다고 찾아볼 수 있는지 끔찍하다"고 말했다.
/삽화=김현정 기자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폭력 콘텐츠 소비 현상에는 한국인의 삐뚤어진 성 인식이 투영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한국은 여성 등 소수자를 대상화하곤 한다. 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편집해 모아 소비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미투' 폭로에서 가해자인 건 이념과 관계없이 다들 성차별적이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잘못된 성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라는 조언도 나왔다. 이 교수는 "성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로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선 피임 등 도구적 교육만 실시하고 있는데 성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도록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도 "매우 부적절한 현상으로, 영화의 큰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여성이 성폭력 당하는 장면만 소비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엑기스 영상'은 영화 콘텐츠로서 성인물에 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아이들이 성을 건강하게 알게 되기 전 왜곡된 시선으로 성폭력을 바라볼 수 있게 돼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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