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발 통상 리스크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 | 2018.02.23 06:25

고강도 보호무역 조치 불구 美 시장 포기 못해…선택 가능한 공식 카드 반드시 활용해야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 결과가 연초부터 연이어 발표되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태양광 셀·모듈과 세탁기에 대해서는 미국 내 수요산업의 반대와 우리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이프가드 조치가 발동됐다.

이러한 조치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미국 상무부는 우리 기업의 대미 철강제품 수출 자체를 위협할 만한 세 가지 권고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보고했다. 특히 대미 철강제품 수출 국가 중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12개국에 대해 선별적으로 53%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우리에게 가장 불리하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의 조치는 수입 자체를 거의 차단시키는 수준임에도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버릴 수 없다는 현실이 그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수입국이자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는 '테스트베드' 시장이며 일부 품목은 미국에서만 수요가 있기 때문에 시장을 포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세탁기의 경우 수입규제를 피하기 위해 과감하게 미국 투자를 결정했지만 모든 기업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다 보니 우리도 미국에 상응하는 보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복조치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상대국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경제 및 시장규모가 충분히 크지 않다는 딜레마가 있다. 더구나 수출 의존도가 높고 자유무역에 힘입어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우리나라가 미국을 대상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부 차원에서 미국 조치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공식적인 방안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 절차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쟁해결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는 지속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승소를 하더라도 조치에 따른 영향은 피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선택 가능한 공식적인 카드는 반드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업 차원에서는 수출지역 다변화 노력을 펼쳐야 한다. 특히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산업군의 기업들은 미국 내 경쟁기업들의 보호요구 움직임을 주시하고 수입규제 상황을 가정해 자체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WTO 제소와 같은 공식적인 문제 제기 외에 양국간 대화의 끈을 이어나가야 한다. 마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수입규제 강화가 자유무역 확대를 위한 FTA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무대에서 다른 국가들과 공조해 보호무역을 배격하고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대미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흑자로 반전되던 1980년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강도 높은 수입규제와 통상압력을 견뎌낸 경험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술 개발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미국발 보호무역의 폭풍우를 헤쳐나가기 위해 다시 한 번 민관이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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