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없는 평창…정·재계 '소통 상실의 시대'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18.02.13 05:30

만남 잦아도 눈치보기 '급급' 실속 없어…국회도 재계 이슈 '개점휴업'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라는 이름이 정경유착에 이어 정경불통의 상징이 됐다."

13일 전경련 연례 정기총회를 앞두고 재계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정치권과의 소통이 원활치 못한 현실에 재계의 불만이 크다.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서 정경유착의 통로로 지목되면서 지난 한해 철저히 소외됐다. 주요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번번이 배제되면서 '전경련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다.

재계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이런 현상이 전경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권과 재계의 소통 자체가 크게 약화됐다.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를 빼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나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 모두 사실상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지 오래다. 대한상의가 재계 전체를 대변할 순 없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정경 소통의 현주소가 또 한번 드러난 자리였다. 기업 입장에선 놓치기 아까운 마케팅 시장이 30년만에 열렸지만 평창 현장에선 기업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기업이 평창올림픽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경기 후원에 대해 오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의 후유증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검찰이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삼성전자 본사를 이틀 동안 압수수색했다"며 "삼성을 비롯해 롯데, 효성 등 대기업 총수가 줄줄이 재판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누가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나 정치권과 재계의 만남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 여러 차례 만났다. 하지만 만남 횟수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게 재계의 솔직한 속내다.


재계 한 인사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당면 현안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자주 만나도 차만 마시고 헤어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다음달 열리는 경제단체협의회 정기총회도 밥만 먹고 헤어지는 자리가 될 공산이 크다. 경제단체협의회 정기총회는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5단체장이 기업 애로사항과 계획을 밝히는 게 관례지만 현실은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해야 할 국회도 줄곧 먹통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문제가 생기면 직무유기한 입법부 탓"이라고 '반협박조'로 건의한 게 지난 연말이지만 국회는 두달째 개점휴업 상태다.

재계에선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이 무산될 경우 정부가 행정해석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일괄 시행할 수 있다는 우려를 버리지 못하는 처지다. 올 상반기 또 한번 최저임금 대폭 인상안이 의결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이든 최저임금 인상이든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현장 상황을 반영해 단계적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이마저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여전히 낮은 포복 자세다. 정기총회에선 관심을 모았던 명칭 변경 계획마저 철회하는 분위기다. '간판 바꿔 달기'라는 여론의 눈총을 무릅쓰고 명칭 변경을 시도하더라도 정부 승인 단계를 넘어서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소외계층 복지 확대는 결국 기업이 사업을 잘해야 해결되는 문제"라며 "정치권과 재계가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제대로 된 소통로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여의도회관.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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