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도 병원있어요"…할아버지 의사들의 토이스토리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이상봉 기자 | 2018.02.12 05:41

'감사하다' 쪽지에 큰 보람 …'택배비 아깝다' 타박엔 마음아파

교실 크기의 장난감병원에서 할아버지 의사들이 장난감 치료에 열심이다./사진=한지연 기자
"장난감 없는 어린이 없도록 하는게 꿈이지."

"삐용삐용" "또르르~" 장난감 전자음 소리가 흘러나오는 인천 남구에 위치한 '키니스 장난감병원'. 지난 7일 오후 3시쯤 찾은 이곳에서 5명의 할아버지 장난감 의사들이 '아픈' 장난감을 치료하느라 여념없었다.

교실 크기의 병원엔 뽀로로를 비롯한 온갖 장난감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고, 한켠엔 완치된 장난감들이 담긴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이 병원의 막내의사 원박사(64·이름없이 조용히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며 실명공개를 꺼려 박사로 칭함)는 기린 모양의 모빌을 당겼다 놓았다가를 반복하며 수리 중이다. 5개월차 인턴 이박사(74)가 "일단 뜯어봐"라며 훈수를 두자, 다른 의사들도 다가와 머리를 맞댄다.

장난감 모빌을 수리 중인 원박사(위 왼쪽), 인턴 이 박사(사진 위 오른쪽), 사운드 북을 수리 중인 김박사(사진 아래 왼쪽), 뽀로로 전화기를 수리 중인 하 박사(사진 아래 오른쪽)/사진=한지연기자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2011년 인하공업전문대 교수 출신 김종일 현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이 은퇴 후 동료 교수들과 의기투합해 세웠다. 공학박사 출신 65세 이상 실버 인력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무료로 수리하는 곳이다. '키니스'(kinis)는 어린이를 의미하는 '키드'(kid)와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를 섞어 만든 이름으로, 장난감을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병원'이라 부른다.

저마다 하나씩 장난감을 들고 앉은 할아버지 의사들은 치료에 열심이다. 누구는 뽀로로 전화기를 분해하고, 또 누구는 전자키보드를 납땜 중이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은 온라인을 통해 진료예약을 받고 장난감을 치료한 뒤 택배로 돌려보낸다.

장난감 무료 AS센터가 흔하지 않아, 하루에 많으면 30~40개씩 택배가 도착한다. 요즘엔 하루에 택배 20개 정도만 예약을 받는데도 한 택배 상자에 장난감이 적으면 2~3개, 많으면 8개씩 들어 있다. 1인당 하루에 10개씩 고치는 셈이다.

수리를 기다리는 장난감과 기증받은 장난감. 할아버지 의사들은 장난감을 수리하고 기부도 한다(사진 위), 할아버지 의사가 작업중인 책상 위(사진 아래 왼쪽), 김종일 이사장이 천장까지 쌓인 장난감택배를 보여주고 있다(사진 아래 오른쪽)/사진=한지연기자
이곳에 오는 장난감들은 전기회로가 고장났거나, 건전지가 부식된 것들이 많다. 대부분 물려받거나 중고로 구입한 것, 주운 것들이다. 원박사는 "모빌을 고칠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는 "모빌이 없으면 아기들이 울어대 엄마들도 힘들다"며 "장난감이 여러 개 와도 모빌부터 손이 간다"며 허허 웃어보였다.

무료 진료지만 책임감은 '전문의'답다. 모든 진료는 '실명제'로 운영돼 장난감을 치료한 박사가 직접 서명을 한다. 만약 고치지 못했더라도 이유를 적어 서명을 한다.

원 박사가 감사편지를 들어보이며 환히 웃고있다(왼쪽) 김 박사가 이혜빈씨의 요술봉을 고치고 있다/사진=한지연 기자
인터넷 예약이 아닌 방문 진료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받는다. 3시30분쯤 '키덜트'(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 이혜빈씨(25)가 요술봉을 고치러 방문했다. 김 박사(71)가 요술봉을 몇 번 만지더니 뚝딱 고쳐냈다. 요술봉이 청아한 소리를 냈다. 이씨는 "만족스럽다"며 "다음에도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할아버지 의사들에게 빵과 음료를 잔뜩 건넸다.

할아버지 의사들은 작은 감사인사를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원박사는 "'감사하다'는 작은 쪽지 하나면 기쁘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편지를 들어보였다. 하지만 하루 20개 택배 중 감사 쪽지가 오는 건 2~3개 정도다.


원박사가 완치된 장난감을 돌려보내기 위해 택배포장을 하고있다/사진=한지연기자
할아버지 의사들의 사기를 꺾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하루 온종일 장난감을 고쳐 보내도 "원래 잘 되던 기능조차 안된다" "택배비가 아깝다" 는 뾰족한 반응이 돌아오면 힘이 빠진다. "택배가 왜 빨리 오지 않느냐"는 독촉도 힘들다. 원박사는 "장난감을 못 고치면 내가 그 누구보다 아쉽다"며 "최선을 다해 고쳤는데도 욕을 먹으니…"라고 말을 흐렸다.

오후 4시30분쯤 막내 원박사가 택배 송장을 붙이느라 바빠졌다. 쌓아둔 장난감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택배기사가 방문하는 시간이다. 할아버지 의사들은 진료 예약, 치료, 택배 보내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한다.

키니스장난감병원의 할아버지 의사들.김박사,원박사, 김종일 이사장,이 박사, 하 박사(왼쪽부터) 할아버지 의사들은 '이름없이 조용히 사회에 봉사하고싶다'며 실명 공개를 꺼렸다./사진=한지연기자
무료로 재능기부를 하고 후원으로 병원을 유지하는 탓에 재정이 넉넉하진 않다. 장난감 부품과 공구를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병원이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고, 의료진도 조금 바뀌었지만 2011년 설립 때부터 지켜온 목표는 흔들리지 않는다. "장난감 없이 자라는 아이가 없도록 하자".

할아버지 의사들은 전국에 또다른 키니스병원이 세워지길 바란다. 김 이사장은 "아이들에겐 장난감이 첫번째 재산"이라며 "1~2살 때 그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노하우를 전수하고, 모든 후원도 할테니 전국에 다른 장난감병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받지도 않지만 동심을 수리하는 게 삶의 큰 보람인 할아버지 의사들. 오늘도 할아버지 의사들은 장난감을 치료하고 있다.


베스트 클릭

  1. 1 "유영재, 선우은숙 친언니 성폭행 직전까지"…증거도 제출
  2. 2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3. 3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4. 4 장윤정♥도경완, 3년 만 70억 차익…'나인원한남' 120억에 팔아
  5. 5 "6000만원 부족해서 못 가" 한소희, 프랑스 미대 준비는 맞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