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에 설마]마트 비상구 '죽음문'…"불나면 갇혀"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방윤영 기자, 김영상 기자 | 2018.02.19 05:50

⑤대형마트·슈퍼마켓 비상구·대피로 점검해보니…탈출 힘들어, 총체적 안전불감증

편집자주 | 일상 속 부주의가 쌓여서 결정적인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설마가 참사로 이어진 끔찍한 악몽을 우리는 반복해왔습니다. 지금도 무심코 지나친 안일함이 사고의 싹을 키울지 모릅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자칫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매일 접하는 익숙한 환경이지만 사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합니다.

서울 용산구 B마트(사진 왼쪽) 지하 2층 비상구 앞은 파레트가 쌓여있어 진입이 힘들다. 서울 중구 A마트 2층 비상구는 사실상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최민지 기자

'비상구는 생명문, 스스로 확인해요!'

서울 한 대형 마트 입구 현수막에 적힌 문구다. 재난상황에 대비해 관할 소방서가 걸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실제 이 마트의 비상구를 '스스로' 확인해보니 생명문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머니투데이가 설 명절 전후로 국내 3대 대형 마트와 대형 슈퍼마켓, 쇼핑몰 등 10곳의 비상구와 대피로를 점검한 결과 1곳을 뺀 나머지에서 모든 곳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어떤 비상구는 매장의 창고로 사용됐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라 일반인이 들어가지도 못했다. 천장까지 가득 쌓인 물건 때문에 대피로가 좁고 비상구 찾기가 미로 수준인 곳도 있었다.

◇대형 마트 비상구 가보니… 천장까지 쌓인 물건, 미로 같은 출구

서울 중구 지상 2개층 규모의 A 대형 마트. 신선식품 코너 옆에 2층 내부 비상구와 대피로는 입점 매장들의 창고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피로 양옆으로 천장 높이까지 물건이 쌓였다. '피난통로입니다(상품적재 금지)'고 적힌 현수막이 무색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라 최종 출구는 확인할 수도 없었다.

3층 내부 비상구도 마찬가지였다. 비상구 쪽에 가까워질수록 통로는 쌓인 물건들로 좁아졌다. 물건을 잔뜩 실은 카트도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서울 용산구 B 대형 마트, 마포구 C 대형 마트도 사정은 비슷했다. B 마트 지하 2층 내부 비상구 앞에는 물건을 나르는 대형운반대(파레트)가 쌓여있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지하 1층 대피로 역시 양옆으로 물품이 쌓여있어 성인 한 명이 양팔을 벌리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서울 마포구 D 대형마트(사진 맨 왼쪽)의 비상구가 매장 내 빵집으로 연결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C 대형마트(사진 가운데) 내 비상구가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모습. 양 갈래 길 중 오른쪽 길로 가자 '비상출입문'이라고 쓰인 스티커로 문이 봉인돼 있다. /사진=방윤영 기자

비상구가 봉인돼있거나 아예 출구 위치를 찾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C 마트의 비상구 유도등을 따라가니 바깥으로 향하는 문대신 양 갈래 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향하니 출입문이 나왔지만 문은 잠겨있었고 '비상출입문'이라고 쓰인 스티커로 봉인돼있었다.

마포구 또 다른 D 대형 마트에서는 매장 내 비상구 유도등을 따라가니 엉뚱하게 매장 내 빵집이 나왔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각종 조리기구로 가득 찬 빵집 주방을 통과해야 탈출할 수 있다.

재난상황에서 탈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에 해당 마트들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A 마트 관계자는 "창립 기념일 때문에 들여온 물건이 많아 대피로 쪽에 물건이 많이 쌓여있었다"며 "즉시 시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B 마트 관계자는 "명절 택배가 많아 파레트를 쌓아둔 것인데 앞으로 관리에 주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물건이 쌓여 좁아진 대피로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대피로 폭을 1.2m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일부 마트는 비상탈출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행태도 보였다. C 마트 관계자는 "물건이 쌓인 공간은 평소 후방 창고로 쓰는 곳"이라며 비상대피로에 물건이 쌓인 것을 큰 문제 삼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또 "스티커로 출구를 봉인한 것은 외부인에 의해 강제로 개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며 문은 비상시 자동으로 열린다"고 해명했다.

동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층 규모 대형 슈퍼마켓은 사정이 더 열악했다. 비상구가 없거나 소화기가 구비 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서울 마포구 E 슈퍼마켓은 정문 말고는 비상구가 없었다. 매장 벽 쪽에 공터로 바로 향하는 문은 창고 출입구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F 슈퍼마켓(SSM)에는 소화기가 있어야 할 곳에 쓰레기통이 놓여있었다.

비상구를 진열대로 가려둔 곳도 있었다. 경기도 부천 G 마트에서는 비상구가 물건 진열대로 가려져 있다. 비상구 표시등은 천장 끝까지 쌓인 물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F 슈퍼마켓(SSM)에는 소화기가 있어야 할 곳에 대신 쓰레기통이 놓여 있다. (사진 아래) 경기도 부천 G 마트에는 비상구를 아예 진열대로 가려놓았다. /사진=김영상 기자

◇전문가들 "적체물에 불 붙으면 탈출 불가능, 비상구 꼭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고질적 안전불감증을 비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탈출로 부근 적체물은 비상시 장애물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적체물에 불이 붙으면 탈출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의 경우 연기 확산과 탈출 경로가 동일해 지상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10조1항은 피난시설이나 방화구획·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다.

비교적 면적이 작은 슈퍼마켓은 비상구 의무 설치 등 관련 규정이 아예 없는 게 문제다. 건축법에 따르면 바닥 면적의 합계가 1000㎡(약 302평) 이상이면 판매시설, 미만이면 근린생활시설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슈퍼마켓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규제를 피한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양방향 피난이 원칙이므로 비상구는 법과 상관없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며 "적어도 출구가 막히면 창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구조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SSM
대형마트와 SSM는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 '준대규모점포'에 해당한다. 대규모점포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건물에 나뉘어 있고 상시 운영되며 규모가 3000㎡ 이상이어야 한다. 준대규모점포는 대규모점포를 경영하는 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가 직영하는 점포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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