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대한민국의 '혁신 과제'

머니투데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 2018.02.07 06:15

[the300][손학규 4차혁명 밑돌놓기④]혁신 비전 없는 삼성, 부동산을 선택한 현대차

실리콘밸리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서 한 컷
한국의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미국의 애플 등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 기업의 미래 전망은 암울했다. 애플의 남건우씨는 “삼성이 그렇게 큰 역할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에게서 "현대차가 이렇게 가면 10년 후 망할 것" 이라는 비관적 예측을 들었다. 대한민국 두 대표기업에 대한 전망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 기업은 어떠할까.




코트라가 개최한 K-Global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과기정통부 차관과 코트라 부사장이 참가했고, 서울대 서승우 교수와 환경친화 자동차 제조업체 피스커(Fisker) 창업자인 피스커가 발표했다. 미래자동차인 자율주행차‧ 전기차에 대한 강연이었다. 산업체제 전환에 국가가 나서서 인프라 구축 등 준비할 것을 해 줘야 하고, 환경 변화에 맞춰 노동과 산업여건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



나는 좋은 행사라고 봤는데 현지 평가는 냉혹했다. 한 한국인은 "국가 예산의 낭비"라고 혹평했다. 중국, 일본, 인도에 비해 발표나 참가 회사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세계는 앞서 가는데 우리는 뒤쳐져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버설한 혁신 계획이 없는 삼성◇



하루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연구소(Samsung Research Institute)를 방문했다. 이곳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글로벌혁신센터(GIC), 삼성전자미국연구소(SRA)가 자리잡고 있다. 연구 인력은 약 1500명이다.

자랑스러웠다. 독자적인 건물도 아름답게 짓고 직원들을 위한 복지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직원구성도 실리콘밸리의 인적(인종적) 구성에 맞춰 있다고 한다. 손영권 사장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알아주는 인재고 인적 네트워크도 넓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2015년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완공한 삼성전자 DS부문 미주 총괄 사옥


다른 한편으로는 실망감이 들었다. 삼성이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인데 미래비전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기업과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아서다. 실리콘밸리에의 삼성 혁신센터도 세상을 바꿀 큰 비전(Vision)을 볼 수가 없었다.

LA와 뉴욕을 40분 만에 주파할 진공튜브 자동차라든가, 화성 우주여행이라든가, 세계 전역에 인터넷을 연결할 위성 운용계획이라든가 하는 '유니버설 비전'(Universal Vision)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계를 바꿀 커다란 꿈을 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기자동차 충전을 9분에 마치고 500 마일을 달릴 수 있게 한다는 피스커 방식의 기술 혁신 계획도 보이지 않았다. 센터 담당자는 "세상을 놀라게 할 기술적 혁신계획을 갖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그것은 이미 말한 조그만 진보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반도체 연구소에서 본 삼성의 세 가지 모토인 △협업(Collaboration) △혁신(Innovation) △성장(Grow)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특히 혁신을 진화(evolution) 차원이 아닌, 혁명적(revolution) 차원에서 성취할 수 있을지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삼성이 미래를 설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정부는 이러한 기업이 대한민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밑받침을 튼튼히 해 줘야 한다. 기업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 '혁신'보다 부동산에 10조를 투자한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이 15일 미래 혁신 기술 및 스타트업 메카인 실리콘밸리에기존 사무소인 ‘현대벤처스’의 위상과 기능을 확대 개편, '현대 크래들(HYUNDAI CRADLE)'을 오픈한다고 밝혔다. '현대 크래들'은 AI(인공지능), 모빌리티,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로봇 등 미래 핵심분야의 혁신을 리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로봇 영역과 미래 모빌리티 융합 시너지에 주목하고 신 비즈니스 창출도 모색한다.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발굴, 투자, 공동개발은 물론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현지 진출을 지원한다. 사진은 현대 크래들 직원들이 실리콘밸리 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센서를 통한 운전 중 생체리듬 측정 기술'을 평가하고, 검증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2017.11.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리콘밸리에는 현대자동차 연구소도 있다. 명칭은 '현대 크래들(Cradle)'이다. 현대차의 실리콘밸리 사무소 격이었던 현대 벤처스(Ventures)를 지난 11월에 확대 개편한 기구다. 기술개발을 위해 전략기술본부 산하 연구개발조직으로 개편해 운영하고 있다.


'크래들'은 요람이란 뜻 외에 'Center for Robotic-Augmented Design in Living Experiences'의 약자다. 차세대 모빌리티를 대표한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혁신 기술을 찾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유망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핵심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로봇 등이다. 벤처 기업과 공동 사업을 하겠다는 인식이 좋게 보인다. 지금은 ‘럭시’라고 하는 벤처기업과 손잡고 차량공유시장을 공략을 추진하고 있다. 로봇을 활용한 자율주행차 시장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실망이 컸다. 존 서 상무가 연구소장이고 직원은 8명이다. 올해 16명, 2019년에는 3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대차가 벤처투자회사에서 기술개발(R&D) 센터로 확대 개편한다고 해서 커다란 기대를 갖고 갔으나, 아무것도 진전된 것이 없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연구원 증원 계획도 형식적인 증원에 지나지 않는다. 건물 이전 계획도 아직 없다.

무엇보다 자동차 제조회사로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 현대차 남양연구소와 의왕연구소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대한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 미시간에는 300명 규모의 연구시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가 디트로이트에서 이곳 실리콘밸리로 옮겨지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의 보수성과 현대차의 보수적 기업 근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가고 있고,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 각국이 앞으로 10~20년 내에 내연 엔진자동차 운행을 금지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적극 강구하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 준비해야 할 일이다. 자율주행이 대세고, 우버(Uber)가 자율주행 택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현대차가 수소차를 개발하고도 지금 일본 토요타에 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수도권에서부터라도 수소 충전소를 만드는 것을 정부가 도와주고 이를 통해 수소차 수요를 늘려줬어야 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산업 발전을 위해 인프라를 깔아주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초적인 지원이고 산업발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다.

대한민국 정부와 현대차의 각성과 반성, 그리고 혁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10조에 매입한 것은 완전 시대착오적이다. 1조만 투자했어도 국내에서 수소차를 움직일 수 있는 수소충전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도 수소충전소 설치와 각급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차량 지원 등을 통해서 수소차의 보급을 늘려나갔어야 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 정부가 세운 한국혁신센터(KIC)◇
실리콘밸리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서 한 컷


실리콘밸리엔 한국혁신센터(KIC)도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때 창조경제 실현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정부가 글로벌 해외거점을 만들고 벤처창업, 현지진출, 연구개발(R&D)협력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국 스타트업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을 현지 기업이나 벤처캐피탈(VC)과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한다.

이헌수 소장이 직접 안내해줬다. 그는 삼성전자 근무 경력이 있는 유능한 인재였다. 이 소장은 "한국 펀드가 외국의 벤처기업에도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못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만 하나의 섬처럼 존재하면 안된다는 설명이다. 미국 기업들이 한데 어울리는 ‘섞임(Mingling)’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소장은 또 “이곳에 한국 벤처단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5000억원, 삼성, LG, SK 등이 각각 1000억원 등을 투자해 벤처단지를 만들어서 한국 스타트업 기업들이 들어오게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장소와 숙소 등을 제공하고, 이곳에 와서 마음껏 기업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돈은 주지 말되, 정부는 간섭하지 않고, 입주 기업에게는 3년 동안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으면 나가게끔 경계도 해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볼만한 좋은 제안이다.

중국은 이 근처 3층 건물을 사서 스타트업 지원 기관 ‘중관촌’을 조성했다. 우리의 KIC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글로벌화의 과제가 아주 크다고 느꼈다.

삼성과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과의 관계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며 협조관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미국의 많은 첨단기업이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미래가치를 보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발전의 계기를 삼았다. 우리 기업들도 여기에서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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