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증권사 옥죄는 인가장벽…규제완화는 말잔치?

머니투데이 송기용 증권부장 | 2018.02.06 04:30
"인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2일 3년 임기를 마친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의 말이다. 역대 금투협회장 중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받는 그지만 몇 가지 숙제를 남겨두고 떠나기 때문인지 흔쾌한 모습은 아니었다. 특히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 초대형IB(투자은행)의 지지부진한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초대형IB 핵심업무인 발행어음(단기금융업) 인가를 안 내주고 있는데 인가를 안 내줄 때는 최소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고치면 언제까지 해줄 수 있는지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증권사들은 초대형IB가 되려고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오랜 시간 준비했는데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인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황 전 회장 발언은 증권업계 불만을 대변한 것이다.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이 두려워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새 정부 들어 높아진 규제 문턱에 대한 불만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지 못한 한 증권사 대표는 "자기자본을 조 단위로, 그것도 단시간 내에 늘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자본 4조원' 요건만 충족하면 초대형IB, 발행어음 인가를 내주겠다는 당국 약속을 믿고 어렵게 자본을 늘리고 IB 인력도 대폭 보강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말이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요건을 충족한 빅5, 5대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만 지난해 11월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4개사는 올스톱 상태다. KB증권은 아예 발행어음 인가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모험자본 공급을 확충하고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며 초대형IB를 추진한 게 2011년이다. 벌써 7년 가까이 흘렀는데 초대형IB 핵심이라고 할 발행어음 사업이 인가 문제로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 자기신용을 토대로 발행하는 1년 미만의 단기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가 초대형IB로 지정되면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신청할 수 있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 가능하고 조달 자금의 50% 이상을 대출, 회사채 인수 등 기업금융에 써야 한다.


유일하게 업무가 허용된 한국투자증권(지난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4조1908억원)의 경우 8조원 가량의 발행어음을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 4조원 이상을 기업금융에 공급할 수 있다. 신용부족 등으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중소기업·벤처기업·스타트업 등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20, 30대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당국 의도다.

이 같은 빅피처(큰 그림)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황 전 회장의 발언처럼 명확하지 않다. 금융당국이 그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문제는 이 사안이 개별 증권사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증권 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을 0.06%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특수관계인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이다. 이 부회장이 5일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보류된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인가 심사가 풀릴지는 미지수다.

NH투자증권은 모기업 NH농협금융지주의 지배구조 문제를 점검하느라 제동이 걸렸다고 알려졌다. 계열사인 NH투자증권이 어떻게 해 볼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인 증권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이유로 발목을 잡는 것은 합당한 제재가 아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당국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조선시대 정조가 시전상인의 독점적 상업활동을 다른 상인에게 허용한 '신해통공'을 본떠 올해를 '무술통공(戊戌通共)'의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행어음 인가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위 대처를 보면 무술통공이 말잔치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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