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미투’는 인류의 불치병 퇴치 운동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2.02 04:55
할리우드 정상의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열세 살에 ‘레옹’으로 데뷔했다. 그런데 얼마 전 포트먼은 ‘미투’(Me Too) 맥락에서, ‘레옹’이 개봉된 직후 팬레터를 가장한 추행, 폭행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때 받은 그 충격 때문에 그후 항상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배우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포트먼은 감독상 후보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전원 남성인 후보들’이라는 말을 붙여 소개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소개받은 후보들이 다 마치 무슨 죄를 지은 것같이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시상식에서 한 명연설에서도 지적했듯이 ‘미투’와 양성평등의 실현은 양식 있는 많은 남성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남자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보거나 무안하게 할 일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남자는 아내의 남편이거나 한 여자의 연인이며 딸의 아빠다. 얼마 전 미국에서 30년간 체조선수 156명을 추행, 폭행한 자에게 징역 175년형이 선고된 데 대해 여자들만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여검사 성추행 사건 소식은 착잡하다. 거친 범죄자들을 다루는 현직 여검사가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상징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인 법무부 장관의 면전에서 선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할 정도의 사회라면, 그리고 그 일이 오랜 세월 묻혀야 하는 사회라면 한국의 다른 곳곳에서는 지금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문유석 판사의 지적 중에 이런 말이 눈에 띈다. (술 핑계를 대지만) “그들은 아무리 만취해도 자기 상급자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성희롱, 성추행은 결국 약자에게 제멋대로 구는 저급한 성품의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범죄다. 진상이 밝혀져서 지금 들리는 소식이 사실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법무부 장관 앞에서 검사가 검사에게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탈한 나라다.


성희롱뿐인가. 레스토랑, 편의점, 슈퍼마켓 어디서나 나이가 많다고, 손님이랍시고 힘들게 일하는 젊은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고 반말을 해대는 사람들도 결국 같은 연장선에 있다. 참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약자에게 그 알량한 힘을 마음 놓고 휘두르는 것이다.

영화 ‘타임 투 킬’에서는 어린 흑인 여자아이를 짐승보다 못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살해한 백인을 아이의 아버지가 보복살인한다. 그 아버지의 변호사는 백인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경위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 다음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 아이가 백인이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피고는 무죄평결을 받는다. 물론 영화니까 그렇다.)

지금 도처에 숨어서 비겁하게 자신의 행동을 감추거나 잊은 척하는 성희롱, 성추행의 가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가 당신 딸에게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양식 있는 남자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믿어주어야 한다. 가해자들은 항상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는 이 추세로 진행된다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 보인다. 성공한다면, 수천만 명이 고통받고 죽어가게 한 암 같은 병을 퇴치한 것보다 더 큰 성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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