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임금 보장은 공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머니투데이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18.02.01 06:10
/사진=이화여대
최근의 최저임금에 관한 논쟁은 열악한 영세업자들이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노동자를 해고해 결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프레임에만 갇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영세업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고 정부도 기존 지원책에 더해 추가적인 지원방안을 예고하고 있기는 하다.

현재 임금에 관한 논쟁은 온통 최저임금 문제에 집중되어 있지만 본래 우리 헌법은 국가에게 ‘적정임금 보장 노력의 의무’와 ‘최저임금제 시행의 의무’를 명하고 있다. 즉 헌법 제32조에 따르면 국가는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

최저임금제도 실시의 의무는 국가가 적정임금 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최소한의 의무이고, 국가는 궁극적으로 적정임금 보장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에서 말하는 적정임금이란 어느 정도 수준의 임금을 의미할까? 구체적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헌법 교과서에서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임금수준이 헌법상의 적정임금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적정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을 넘어서는 ‘생활임금’과 유사한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생활임금’은 보통 ‘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에는 본래 돈이나 물질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존엄한 생명과 인격이 결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을 마치 상품처럼 취급해 가격을 매기고 ‘임금’이라는 명칭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미 그 자체로서 비인간적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약 70%가 임금노동자라는 통계청의 공식 자료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노동에 대해 값을 매기는 것이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임금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날 노동자 개인의 존엄성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최저임금 결정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비혼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비혼 단신근로자의 월평균 실태생계비는 약 175만원이었고, 2009년 이후 실태생계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8년 최저임금은 월 157만원이다. 즉, 혼자 벌어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2018년 최저임금은 2016년 평균 생계비에 훨씬 못 미친다. 하물며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인간적인 임금, 적정임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우리는 최저임금 내지 적정임금이 전체 공동체의 건강한 유지, 발전을 위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에 관한 선언으로 천명된 ‘필라델피아 선언’은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고 명시했다.

임금, 근로시간 등의 근로조건을 시장의 자유에만 맡겼던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는 참혹했고, 이로 인해 20세기 초반 자본주의는 몰락의 위기에까지 봉착했었다. 그 위기에서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에 대한 법적 강제와 노동조합 활동의 법적 보장으로 대표되는 노동법 이념이다.

빈곤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주요 타겟으로 하는 최저임금제도 또한 그 이면에는 일부 빈곤 계층을 방치하면 결국 공동체의 존립이 위협받게 된다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34개국 중 세 번째로 높다는 결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위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책이자 공존의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구체적인 최저임금 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영세 자영업자들 역시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라는 점, 그들 중에는 임금노동시장에서 배제돼 어쩔 수 없이 자영업자가 된 경우가 많다는 점,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 등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입장이 정책에 보다 섬세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더욱 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을 유연하게 보완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베스트 클릭

  1. 1 "유영재, 선우은숙 친언니 성폭행 직전까지"…증거도 제출
  2. 2 장윤정♥도경완, 3년 만 70억 차익…'나인원한남' 120억에 팔아
  3. 3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4. 4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5. 5 갑자기 '쾅', 피 냄새 진동…"대리기사가 로드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