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관리사, 말 뒷발에 채여 팔 부러졌는데 산업재해는 0건"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 2018.01.30 04:12

'목표지향적' 무재해운동의 그늘에 가려진 산재 은폐…'과정지향적' 산재예방으로 정책 전환 계기

지난해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고 이현준,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죽음과 관련 한국마사회의 경영진 퇴진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영진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해 9월 마사회 특별근로감독에 나갔던 고용노동부는 팔에 깁스(고정 붕대)를 한 마필관리사를 발견했다. 해당 경마장에서는 최근 발생한 산업재해가 없다고 보고했었다. 고용부 관계자의 추궁에 마필관리사는 말 뒷발에 차여 팔이 부러졌다며 숨겼던 산재를 털어놨다.

1979년 9월 시작된 무재해운동은 산업현장에 재해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고용부는 그동안 무재해운동은 산재가 발생하지 않는 사업장을 포상하고 공공발주 공사에 입찰할 경우 가산점을 줘 무재해를 독려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도 야기했다. 일상적으로 산재를 숨기고, 입찰에 불리할까 봐 초기 산재 대응을 잘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등 중대형 산재를 키운 것.

이러한 무재해 운동의 ‘본말전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쓰여온 배경은 무재해를 지표로 한 인사관리가 산재예방 과정에 대한 관리보다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등의 관리자 입장에서는 무재해라는 목표만 설정해주고 달성·실패 여부로 소속부서와 하청업체 등을 관리하는 게 편하다”며 “인사고과도 결과만 놓고 처리하기 때문에 복잡한 시스템이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많은 공공기관·민간업체에서 무재해 여부에 따라 부서별 인센티브를 달리 주다 보니 산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은 근로자가 나서서 이를 은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같은 무재해 운동의 그늘 때문에 정부 뿐만 아니라 양대노총 등 노동계에서도 새로운 과정지향적 산재예방 운동으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고용부는 앞으로 무재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을 지원하고, 이를 수치화해 공공기관 등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했다. 각급 기관과 민간기업들이 이를 지키도록 하는 방안을 보완해 오는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산재 예방을 위한 새로운 지표는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한스-호스트 콘콜로스키 ISSA(국제사회보장협회) 사무총장이 주장한 ‘7가지 핵심 규칙’(7 Golden Rules)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당시 콘콜로스키 사무총장은 모든 재해를 예방하자는 ‘비전 제로’ 캠페인을 선포하며 1980년 시작한 안전보건경영시스템, 2008년 시작한 예방문화 중심에서 이제는 재해를 막기 위한 과정 중심으로의 산재예방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전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7가치 규칙과 체크리스트를 제시했다. 이 규칙들은 △안전보건 실행을 위한 관리자의 리더십 △위험 인지 및 관리 △산업안전보건 실행을 위한 중장기 목표 설정 및 프로그램 개발 △안전보건체계의 원활한 운영 △안전한 기계·기구의 사용 △자격향상 및 역량강화 △안전보건관련 이슈에 근로자 참여 유도 등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무재해는 지속적으로 추구해야할 과제이지만 이를 목표로만 삼는 것과 이를 위한 과정에 집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앞으로 산재가 은폐되지 않도록 무재해 여부보다는 재해 예방을 위한 과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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