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병×이 어떻게…” 소리듣던 ‘꼴찌’ 검사가 공판부 신뢰 검사로

머니투데이 인천=김고금평 기자 | 2018.01.17 06:34

[저자를 만났습니다] ‘검사내전’ 낸 김웅 인천지방검찰청 공안부장…“어쩌다 검사,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은 똑같아”

최근 '검사내전'이라는 책을 내며 '생활형 검사'로 살아온 인생을 얘기한 김웅 인천지방검찰청 공안부장. 그는 "어쩌다 검사가 됐지만, 권력기관이 아닌 생활형 인간으로 살아온 삶의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인천=김고금평 기자

그는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어를 위해 인천지방검찰청 입구에 마중 나온 그의 태도에선 ‘어깨 힘’ ‘경직된 말투’ 등 영화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장면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187cm의 큰 키가 쉽게 해낼 수 없을 듯한 ‘깍듯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막연하게 지녔던 검사라는 딱딱한 이미지의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는 대민 봉사에 나선 사회복지사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라는 부제가 붙은 책 ‘검사내전’을 최근 내놓은 그는 384쪽에 이르는 내용과 다르지 않은 삶의 궤적을 증명하듯 낮고 겸손한 태도를 시종 견지했다. 김웅(48) 인천지검 공안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같이 사는 검사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촌로(村老)처럼 생활인 검사로 살아왔고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배경에는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 판단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공안부장이라는 직함이 던지는 말치고는 유약하거나 유연하게 들렸다. 역대 정권에서 공안부가 해온 ‘역할’을 알기에 그의 말이 더욱 낯설었다. 하지만 책에서도 명시하듯 ‘법을 통한 일도양단의 보복적인 처단은 결국 정의를 빙자해 자신의 복수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법과 권력을 대하는 그의 자세다.

“검사 배지를 처음 달면, 그게 권력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존재인 걸 알게 돼요. ‘범죄율 줄이는 데 (우리가) 도움이 될까’ 이런 무력감이 들면서 겸손해지죠. 밖의 시선과 달리, 검찰 내부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아냈을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마라’는 공자의 말이 계속 회자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형사부 사건은 ‘옳고 그름’의 차이가 명확해야 하는 데도, 그가 선악의 합리적 구분보다 감성에 가까운 인문학적 통찰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느낀 처절한 경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거의 '폐인'으로 살았고, 초년 검사 시절엔 당청꼴찌로 윗사람에게 숱한 수모를 겪으며 우울증까지 겪어야했던 김웅 공안부장. 그는 딱딱한 조직 분위기 속에 담긴 선배들의 따뜻한 위로와 조언 덕분에 현재 공판부에서 신뢰할만한 몇 안되는 검사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김고금평 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시절, 그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폐인’으로 살았다.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삶은 직장에 대한 목표도, 관계에 대한 정립도 무너뜨렸다. 졸업 후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고시를 보고 통과했지만, 검사 생활도 고난의 연속이긴 마찬가지였다.

폭탄주를 피하기 위해 회식 대신 당직을 자처하고, 고향에서 체육행사를 연 검사장을 향해 “관할 지역에서 열었으면 지역 경제 불황도 살릴텐데…”라며 쓴소리를 던져 쫓겨나기도 했다. 충성심을 시험하는 차장검사의 호출 전화에 꿈쩍도 하지 않아 ‘조직 부적응자’라는 수식에 ‘또라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상명하복 중심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 거기에 일까지 빨리 처리하지 못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사건 처리 늦고 장기 미제 사건 늘면서 ‘검찰청 꼴찌’ 검사로 낙인 찍힐 땐, “저런 병×이 왜 검사가 돼서…. 요즘엔 아무나 (검사) 막 뽑는다니까”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렇게 7, 8년 세월을 견디자, 결국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다 부질없다.”는 생각에 사표를 낼 때 즈음, 그에게 외국 연수 기회가 날아들었다.

“저처럼 조직 문화 부적응자가 지금까지 18년간 검사생활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역시 검찰 문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내리사랑’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저를 견디게 해 준 것 같아요. 위에다 쓴소리하고 반감 표출하고 일 못 해도 선배들이 언제나 조언하고 도와줬거든요. 연수도 ‘꼴찌’에게 준 기회인 셈이죠.”

실적은 ‘꼴찌’였지만, 사건을 깊게 보는 안목은 탁월했다. 공판부에선 그가 기소한 사건은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알게 모르게 퍼져있을 정도다. 느리지만 깊은 사건 처리, 상사와 ‘맞짱’ 뜰 기개가 선배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요직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에 두 차례나 다녀왔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검찰총장이 부른 등산가는 자리에서도 “의무적으로 떼로 다니는 건 싫다”며 유일하게 빠진 검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인천=김고금평 기자
거대한 여객선의 나사못 정도로 묵묵히 살아간다는 이 생활형 검사는 나(가해자)보다 남(피해자)의 입장에서 느낀 경험 때문인지 수사에서도 범죄 자체의 악보다 그 악의 원인인 사람들의 욕망과 삶의 그림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피해자 중심의 사건을 다루면서 계속 드는 의문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였어요. 한번은 도박으로 구속된 아줌마를 면회 온 딸이 그 가혹한 조건에서도 열심히 살고, 자신의 엄마를 용서하는 걸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어쩌다 검사가 됐지만, 인간은 모두 나약한 존재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죠.”

그는 ‘생활형 검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건의 중요도를 가르는 건 우리(검사) 시각이지만, 당사자에겐 그 사건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거든요. 생활형 검사는 세상이 관심 갖는 사건이 아니라, 생활 속 사건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아닌가요?”

국가보안법 등 권력과 관계있는 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인식된 공안부는 서민생활을 다루는 사건(95%)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인천지검 공안부가 처리한 통계를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4건이고, 5000여 건 정도가 임금체불 등 근로자와 관계된 사건이었다.

그는 “드라마에서 양복 빼입고 요정에서 정치인 만나는 공안부 검사들 얘기가 많은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검사는 권력으로 사는 게 아닌, 이해로 산다는 사실을 그는 '삶의 흔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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