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사법부도 입법부도 인식 변했다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 2018.01.15 04:02

[the300][MT리포트-배임죄④]법원 '판단기준 구체화'…국회 '특별배임죄 예외조항 신설'…미래 위험 투자 '기업가 정신' 존중 분위기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의 배임 혐의 일부를 무죄 취지로 판단해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기업집단 내 계열회사들 사이 지원행위가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계열회사의 선정 및 지원 규모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됐다면 배임 혐의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배임죄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전까진 사법부의 배임죄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경향에 기업 최고경영진의 경영판단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앞으론 경영판단 여지가 넓어지고, 더 과감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사법부의 인식 변화에 입법부도 호응했다. 같은 달 국회에선 특별배임죄의 예외 조항을 신설한 상법 개정안이 회부됐다.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이 직접 대표발의했다. 새해 들어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기업이 실패를 감수하고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과감한 경영판단이 중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이 법안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성실한 경영자의 사업실패를 처벌" = 개정안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상당한 주의를 다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믿으며 경영상의 결정을 내렸을 경우에는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대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미국과 독일은 이같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오래 전부터 명문화했다.

권 위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사법부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한 상황에서 법 적용의 안정성을 위해 발의했다"며 "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했지만 사업상 실패한 경영자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지금까진 '성실 실패'에 따른 배임죄 처벌로 기업가들이 보수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좀 더 과감하게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안 처리 계획과 관련, "법안 심사는 법사위 고유법을 심사하는 제1소위의 역할"이라면서도 "3당 간사와 잘 협의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업무상 임무 위배' = 배임죄는 우선 형법 355조 2항에 규정됐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해당한다. 회사의 이사나 집행임원, 감사 등이 배임행위를 한 때는 상법 622조의 특별배임죄가 적용된다.

처벌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이 적용된다. 상법상 특별배임죄와 특경법상 배임은 형법의 특별규정으로 적용된다.


법조 전문가들은 배임죄 요건에서 '업무상 임무 위배'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배임죄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검사와 판사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될 때가 적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배임죄 영역은 전문가가 탄생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패·기업가정신에 관용없는 현행법 = 배임죄는 특히 기업가의 경영판단에 적용할 것인지가 치열하게 다퉈져 왔다. 과거 검찰과 법원은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결과에 기초해 '배임의 고의'를 추론하고, 기업 스스로 손실을 감수한 경영판단에 대해서도 배임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재계를 중심으로 '배임의 고의'를 더욱 엄격하게 규정하고 경영판단에 대해선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법 개정 요구가 높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배임죄 적용에서 경영판단을 제외하는 취지로 법이 개정된다면 법집행자들이 실무적 혼선을 피할 수 있고 법 적용 시 사전에 일관된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 개정 없이도 법원이 판례를 통해 경영판단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검찰이 일단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식으로 무리한 기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기소된 기업가는 무죄를 선고받아도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최근엔 혁신성장에도 배임죄가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 등 불확실성이 높아진 경영 환경에서 기업인의 경영판단에 대한 폭넓은 면책이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혁신을 선도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지만 현행법은 실패와 기업가정신에 관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위험을 위협으로 만드는 배임죄" = 20대 국회에선 권 위원장의 상법 개정안 외에 배임죄 완화 법안이 아직 없다. 오히려 배임죄 처벌 형량을 높인 특경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19대 때도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3년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 1건 밖에 없었다. '특별배임죄 판단에서 경영상 결정에 따른 사안일 경우 정상참작을 한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한 법안이었다. 다수 의원들이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재벌 봐주기' 등의 오해를 살까 조심스러운 태도다.

지난달 말 롯데그룹 횡령·배임·탈세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변호에 참여했던 박철 변호사는 "배임죄의 엄격한 기준이 기업가정신을 살린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기업가정신은 미래위험을 안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미래를 100% 확신할 수 없는 기업경영의 특수성에도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위험을 위협으로 느끼게 만들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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