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자니 불안, 안넣자니 배 아파…'암호화폐 눈치족(族)'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01.09 06:05

리스크 싫어하는 직장인들도 "벌었다" 주변 얘기에 솔깃…"소신껏, 신중히 투자해야"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대기업에 다니는 10년차 직장인 정성호씨(39)는 최근 암호화폐(가상통화) 투자를 놓고 생각이 많다. 여윳돈으로 주식투자 정도만 해왔던 정씨는 당초 가상통화에 관심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퍼센트(%)씩 등락하는 게 '투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최근엔 '몇백만원씩 벌었다'는 지인들의 얘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정씨는 "돈을 넣자니 불안하고 구경만하자니 배 아프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암호화폐 투자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눈치족(族)'이 늘고 있다. 주로 소규모 투자를 통해 용돈벌이 정도만 해왔던 직장인들로 위험을 떠안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한 직장인들이다.

사람인이 직장인 941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일 조사한 결과 응답자 31.3%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투자 이유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54.2%)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고, 평균 투자 금액은 566만원이었다. '암호화폐 광풍' 속에서도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8일 머니투데이가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는 직장인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39명)는 투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큰 손실을 입을까 두려워서'라고 답했다. 이어 '보안 등 시스템이 불안해서(10%)', '뭔지 잘 몰라서(8%)' 등의 응답이 나왔다. '실제 화폐 같지가 않아서', '열풍이 곧 사그러들 것 같아서' 등의 기타 답변도 있었다.

현재 투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 대다수(36명·72%)는 '가상화폐 투자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상화폐 열풍에 관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투자하지도 못하는, 이른바 '눈치족'인 셈이다.

이들을 유혹하는 건 가상화폐의 수익률이다. 은행원 박모씨(29)는 "신문·방송에 나오는 몇백억씩 벌었다는 이야기는 믿지 않는데, 직장 동료나 친구들처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몇백만원씩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믿을 수 밖에 없다"며 "다들 버니 부럽고, 나만 시대에 뒤떨어진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마땅한 투자 수단이 없다는 점도 눈치족들이 가상화폐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3000만원짜리 2년 만기 은행 적금을 찾은 직장인 이승준씨(33)는 기대치보다 낮은 이자를 보고 실망했다. 이씨는 "가상화폐로 한 달 월급을 벌었다는 동료 이야기를 들으니 2년 적금 이자가 무색해보이고 허탈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눈치족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주저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손해를 볼 우려가 크고 시간을 많이 쏟아야한다는 것. 중견기업 직장인 서명수씨(41)는 "가상화폐는 주식처럼 장 마감이 없어 밤낮 없이 시세에 몰두해야 할 것 같다"며 "비트코인 좀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잃는 시간의 가치도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도 기본 원칙에 따라 소신껏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 전문가는 "가상화폐도 다른 투자와 다를 것 없다. '고수익 고위험' 원칙에 따라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게 투자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향후 규제 등 정부 정책에 따라 가격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감안해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들과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지난해 말 발표된 정부 대책에 따라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막은 상태다. 오는 20일 이후 각 은행과 거래소의 전산시스템 개발에 맞춰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전환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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