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을 제패한 데에는 3대에 걸친 오너 결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역사는 1974년 미국 모토로라 출신 강기동 박사가 설립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수 이후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3년 2.8 도쿄구상을 거쳐 그 해 3월15일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반도체 산업 진출 선언문을 발표하고 기흥 공장을 짓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가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고 성장 가능성을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삼성이 그와 같은 분석이 틀렸음을 입증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1983년 11월, 삼성전자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것. 이는 삼성 반도체 성공신화의 전주곡으로 평가된다.
이 선대회장이 30여 년을 내다본 혜안으로 반도체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면 중요한 고비 때마다 성장의 길을 연 것은 이건희 회장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예가 2001년 '자쿠로 회동'이다. 이 회장은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인근의 타쿠로 음식점에서 당시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반도체총괄사장, 황창규 메모리사업부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도시바로부터 낸드플래시 합작 개발을 제의받은 것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일본은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한 회사로서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삼성전자 고위 임원진은 자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제안, 이 회장도 이에 동의해 도시바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독자 사업을 추진했다.
적절한 때 투자도 놓치지 않았다. 이 선대회장은 작고 직전까지도 기흥 공장 1~3라인 공사를 재촉했고 1987년 신임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적자로 인해 공사 중단을 건의하는 임원진에 오히려 화를 내며 '제2 창업'을 공언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992년에 D램 1위, 1993년에 메모리반도체(D램과 낸드플래시) 1위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둔 지난해, 총 투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 밝힌 평택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자원없는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로 할 수 있는 건 첨단산업"…사람에 공들인 삼성=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산업진출 선언문을 통해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로 할 수 있는 산업이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중 반도체산업은 성장성이 크고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도 지대하며 기술 및 두뇌 집약적인 고부가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에 적합한 산업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삼성은 반도체 분야 우수인재 육성과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사업 초창기 반도체 사업인력은 이 선대회장의 특명을 받아 해외지사를 통해 반도체 정보를 입수하고 철저한 시장 조사 및 사업성 분석에 돌입해 64K D램 개발 등 첫 성과를 내는데 매진했다. 김광호 전 부회장이나 이윤우 전 부회장 등이 1세대 경영진에 속한다.
1983년 삼성 반도체 1라인 설립 당시 107명의 64K D램 개발팀이 경험과 전문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해 무박 1일간 64Km 행군하며 정신력과 체력, 굳건한 팀웍을 다졌다는 일화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미국에서 선진 기술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온 점이 공통점인 진대제 전 사장과 황창규 전 사장 등은 2세대 반도체 경영인으로 꼽힌다. 특히 진 전 사장은 미국 IBM 출신으로 당시 사측의 만류에도 불구, 1985년 고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 전 사장과 황 전 사장 등의 명맥은 권오현 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과 김기남 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초창기 메모리 집중·단일부지 전략 구사로 경쟁력 '확보'=적기에 주효했던 삼성전자의 선택과 집중 전략도 성공요인이 됐다. 그 중 하나는 사업 초창기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한 전략이다.
반도체업은 크게 D램·낸드플래시로 구성된 메모리반도체와 그 이외 종류의 반도체를 모두 아우르는 시스템반도체로 구성된다. 그 비중이 약 3대 7수준인데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전세계 시스템반도체 매출액은 2083억달러, 메모리반도체 820억달러로 집계됐다.
시장으로 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더 컸지만 삼성전자는 당시 사업 실정에 맞다고 판단한 D램 분야에 우선 집중키로 결정했다.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에 집중한 뒤 낸드플래시, 시스템반도체 등 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가자는 취지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PC 성장기인 1990년대~2000년대까지 PC 종속 사업으로 여겨졌던 D램 부문에서 큰 결실을 거뒀고 2000년 이후 모바일 시기를 맞아 낸드플래시가 캐시카우로 급부상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지속중이고 자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엑시노스' 시리즈를 내놓는 등 성과도 창출중이다. 다만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기업의 데이터센터 등에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했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단일 부지전략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연구소는 도쿄에, 사업장은 자연재해 등을 우려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산재해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1983년 기흥에 사업장 첫 터를 닦은 이후 최근까지도 기흥·화성 클러스터(권역)에서 연구와 생산을 모두 담당해왔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와 연구소가 가까이 있을 경우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다보니 빠른 속도로 단점을 수정하고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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