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약소국 비애를 스스로 만들지 말자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2018.01.04 04:20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는 강대국간 이해관계와 다툼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한 역사다. 지나간 시대를 산 우리의 선조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든 상관없이 이 땅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은 강대국의 입김과 유혹과 그림자가 자신들 삶의 앞마당까지 잠입했음을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먼 과거보다 지금 훨씬 더 빈번하고 전면적이며 강렬하다. 왜냐하면 강대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이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지고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 속에서 사람이면 누구든 힘센 자들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만 자신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안다. 심지어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생존에 더없이 유리하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는다. 이러한 자각은 비단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저 수많은 동물의 삶을 관찰해보면 힘의 불균형을 역전시킬 수 없는 한 그들 역시 이러한 원칙에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알 수 있다. 인간도 생물학적 존재로서 유기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 한 사례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쯤부터 이러한 원리를 따랐다. 주변 강대국을 떠받들고 심지어 조공하면서 그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삶을 도모해왔다. 어쩌면 이것은 규모가 작고 힘이 약한 국가가 살아남는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주체적으로 자각하고 자신의 운명을 함께 개척해나갈 때, 물리적 측면에서의 약소국 그리고 그에 따른 이러한 행위가 우리를 약소국으로서 비애를 겪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이 지구상에 물리적으로는 작고 약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는 국가들이 많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우리를 약소국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비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힘의 불균형에 따른 강대국과의 전략적이고 때로는 주종의 관계를 현실에 대한 효과적 대처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을 때 우리는 더이상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자신의 존재적 가치와 이유는 특정 강대국과의 불가분의 관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약소국의 지위로 제한하고 거기에 합당한 행동방식과 인식체계를 갖게 된다. 동시에 그런 자의식 때문에 때론 약소국이라는 단서를 보이는 행동에 과민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면 특정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과 벌이는 논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자기주장이지만 우리가 특정 강대국에 보이는 그런 행위는 둘의 관계를 위협하는 그래서 금기시해야 할 행위가 된다.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에 보이는 자신을 낮추는 행위는 겸손이지만 우리가 특정 강대국에 보이는 그런 행동은 굴욕이고 굴종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를 단위로 한 전체로서 스스로 그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노력도 충분히 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강대국에 앞다투어 달려가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달라거나 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면서 우리끼리는 그 강대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사분오열 쪼개지고 지리멸렬 찢어진다. 심지어 때로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보다 개인적 안위를 위해 강대국과의 관계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심리적으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한 책임의식과 공동체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자 할 때, 그 속에서 건전한 지지와 협력, 바람직한 비판과 논쟁 그리고 대안이 가능한 것이다. 새해에는 그러한 모습의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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