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전문점이 아니라 '라면 플랫폼 회사' 입니다"

머니투데이 오사카·도쿄(일본)=류준영 기자 | 2018.01.15 03:47

[데이터가 국부다]③소프트뱅크 '페퍼' 데이터 모아 앱스토어 개설…"다른 회사 로봇도 우리 SW 받을 것"

편집자주 |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연간 36조원을 데이터에 쏟아 붓는다. 4차산업혁명의 동력인 ‘데이터’ 경쟁을 위해서다.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등 곧 도래할 지능정보사회는 수없이 쌓인 데이터로 움직인다. 데이터는 미래 사회의 기반이자 국부다. 정부가 4차산업혁명 대응을 위해 DNA(데이터-네트워크-AI) 프로젝트를 내세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데이터 전쟁이 시작됐다.

“오마치쿠다사이(기다려 주세요).”

지난해 11월 20일,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맛집으로 유명한 ‘이치란 라멘’, 10평도 안 되는 매장 정문 앞엔 한·중 관광객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이치란 라멘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혼밥(혼자먹는밥)’의 성지로도 불린다.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런 독특한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 입에 잘 맞는 맛이 결정적인 비결이다.

이치란에서 나눠주는 라면·토핑 추가용지/사진=이치란 홈페이지
입장할 차례가 되자 직원이 라면과 토핑 추가용지를 나눠줬다. 받아든 선택지를 보니 막막했다. 떡라면·만두라면 정도로 구분하던 한국식과 다르게 지나치게 복잡했던 탓이다. 이치란 라멘에선 손님이 면발의 쫄깃한 정도와 국물의 진한 정도를 직접 종이에 적어 주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맛은 싱거운 맛, 기본, 짙은 맛 중 택일한다. 이런 식으로 기름기 정도(없다·담백·기본·많다·너무 많다)와 마늘(없다·약간·기본·절반·1개), 파(없다·대파·실파), 고춧가루 포함 조미료(없다·½배·기본· 2배), 면발(너무 질기다·질기다·기본·연하다), 돼지고기(없다·있다) 등을 모두 선택해야 한다.

이치란 라멘 식당 내부/사진=이치란 홈페이지
동행한 여행가이드는 이치란 라멘의 이렇게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조합 수가 9000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치란 라멘은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데 새롭게 문을 연 식당에선 후쿠오카, 도쿄, 요코하마 등 다른 분점들로부터 수집·정리된 ‘라면 레시피 데이터’도 넘겨받는다. 이를 통해 어떤 유형의 고객들이 어떤 류의 특성을 갖춘 라멘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유형을 분석해 새로운 메뉴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를 파는 라면 가게’라는 별칭이 붙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이드는 “50년 역사를 지닌 이치란이 몇 해 전부터 라면 전문점에서 라면 플랫폼 회사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일본 도쿄 베르사르 시오도메 빌딩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로봇월드 2017’에선 호텔·식당 매니저복, 간호사 가운, 은행 유니폼, 교복 등 각기 용도에 맞게 차려입은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가 참관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페퍼는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손님을 안내해 주고, 영어와 일본어 등으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페퍼는 16개의 고성능 센서를 장착해 사물과 인간을 알아보고 행동한다. 이로부터 수집한 자료가 소프트뱅크의 중앙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간호사, 호텔, 레스토랑 등 업종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페퍼/사진=류준영 기자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페퍼가 처음 나왔을 땐 특별한 기능이 없어 그저 손님을 끌기 위한 마케팅용에 가까웠지만 최근엔 각종 결제부터 호텔체크인, 주변관광지 안내, 환자 리스트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대부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회사에서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최근 인구감소로 서비스 업종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로봇으로 대처하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늘어난 점도 한몫을 했다.

이날 소프트뱅크는 4000여 회사에 판매된 페퍼가 모은 데이터로 이른바 ‘로봇용 앱스토어’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페퍼 구매자가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를 앱스토어에서 앱(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듯 다운받아 설치하면 되는 플랫폼 서비스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페퍼를 구매한 후 해당 플랫폼에서 ‘간호용 SW’를 다운받아 설치하면 그 즉시 ‘간호용 페퍼’로써 기능을 수행한다. 현장에서 만난 간호용 페퍼는 진료 대기 중인 환자로 설정한 직원에게 다가가 어디가 불편한지 물어본 뒤 환자의 답변을 환자 진료 기록부에 정리하고, 이 내용을 실시간으로 의사가 사용 중인 PC에 전달하는 시연을 펼쳐 보였다. 또 치료나 시술 전 과정을 기록한 동영상을 환자에게 보여주면서 앞으로 받게 될 치료과정을 설명했다.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가 손에 든 웹카메라로 상대방을 얼굴을 인식한 후 필요한 정보를 가슴에 부착된 태블릿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소프트뱅크 한 개발자는 “단순히 페퍼를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의 ‘로봇 데이터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각기 다른 회사에서 만든 로봇일지라도 각 기업이나 가정에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맞춤형 SW를 페퍼 앱스토어에서 내려받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를 새 비즈니스로 잇는 시도는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신규 사업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유니콘 기업( 기업가치 1조 원을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은 기업가치 50억 달러(약 5조 3540억원)을 기록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아웃컴헬스’이다.

병원 의료진이 아웃컴헬스가 제공한 의료정보시스템을 통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있다/자료=아웃컴헬스 홈페이지

아웃컴헬스 시스템을 운영 중인 병원에 간 환자는 대기실에서 전용 태블릿PC를 받게 된다. 태블릿PC로 문진표를 작성하면 의사에게 그 즉시 전송된다, 진찰실에선 전문의들이 벽면에 설치된 입체 모니터에 3차원(D) 인체 해부도를 띄워놓고 치료방법을 상의한다. 이 회사 시스템은 현재 미국 23만 여명의 의료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아웃컴헬스 측은 “2020년이면 미국 전체 의료인력의 70%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아웃컴헬스의 서비스가 모두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 대신 회사는 의사나 환자로부터 서버에 쌓인 연간 5억8500만건의 환자진료기록 빅데이터를 보험사와 제약사에 팔아 수익을 올린다. 2016년 기준 이 회사가 기록한 매출은 1억8000만 달러(약 1927억원)이다.

병원 의사가 아웃컴헬스가 제공한 의료정보시스템을 통해 환자의 진단 기록을 읽어보고 있다/자료=아웃컴헬스 홈페이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과학기술 전문지 ‘테크놀로지 리뷰’가 발표한 ‘2017년 가장 똑똑한 회사 50’(50 Smartest Companies 2017)에서 올해 새롭게 이름을 올린 기업의 공통된 특징을 꼽으라면 고객과 상품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서비스를 개선했다는 점이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기술만으로 창업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획득이 가능한 시장으로의 진입도 창업 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연구위원은 관련한 예로 중국 공유자전거 기업인 ‘오포’를 들었다. 오포는 세계 9개국 170개 도시에서 1000만 대 자전거를 운영하면서 서비스 지원국 인구의 이동패턴을 빅데이터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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