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58년 개띠’] 구효서 "30여년 쉼 없는 글쓰기…동력은 '변덕'"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 2018.01.06 05:16

[릴레이 인터뷰] ②등단 31년 소설가 구효서 "전쟁의 흔적 체감 유년 기억,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편집자주 | 띠 앞에 연도를 붙이는 간지는 ‘58년 개띠’가 유일하다. 이 상징이 설명하듯 58년 개띠 출생자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 회자한다. 90만 명에 이르는 최다 출생자로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세대다. 생존 경쟁이 치열했지만 고교 평준화 입시제도를 통해 평등의식을 배우고, 가장 일할 나이인 30대 후반 외환위기인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겪으며 단합에도 앞장선 이들은 ‘위’로부터 눈치보고 ‘아래’로부터 자극받는 ‘낀 세대’의 전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18년 60세, 58년 개띠들은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치열한 과거를 딛고 찬란한 현재를 거쳐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는 문화예술계 ‘58년 개띠’ 5명의 인생을 따라가봤다.

'30년간 쉼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효서 작가(60)는 "변덕스런 성격 덕분"이라고 답하며 웃었다./사진=홍봉진 기자.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게도 매년 한 작품씩 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등단 31주년, 환갑을 맞이한 구효서 작가는 1987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거르지 않고 작품을 발표할 만큼 부지런하다.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생생히 남아있던 전쟁의 파편들을 피부로 겪으며 자란 베이비붐 세대. 그에겐 남다른 작품의 원천이라도 있는 것일까. 지난달 머니투데이 사옥에서 구 작가를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때론 눈시울을 붉혔다가 새해 구상 중인 작품 이야기를 해주며 기대감 어린 눈빛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58년 개띠 작가를 대표해 만난 그지만 사실 개띠가 아니라는 비밀 아닌 비밀도 털어놓았다. 하지만 60대에 접어든 것, 30대 초반에 등단해 90년대 중반부터 60대 작가로서 지난해 이상문학상까지 수상 행진이 이어진 것 모두 그에게 큰 의미는 없어보였다. 그는 여전한 현역이요, 쏟아낼 이야기, 뽑아낼 문장이 한없이 이어질 것 같아 보였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부모, 맏형이자 아저씨일 그는 우리시대의 작가다.

-30년간 매년 한 편씩 발표했다. 쉼 없는 글쓰기의 특별한 동력이라도 있는 것인가.

▶변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하지 못한 것이 내 장기인데, 덕분에 꾸준히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웃음) 꾸준하지 못한 것이 꾸준한 걸 가능하게 했다고나 할까. 지난 30년 동안 평균 1년마다 변덕을 죽 끓듯 부렸다. 변덕 한 번 부릴 때마다 한 권의 소설이 출간된 셈이다. 조금 하다 이렇게 써볼까 저렇게 써볼까 딴짓할 궁리를 한다. 그래서 내 소설은 한 사람이 쓴 것 같지 않다고들 한다. 변덕은 어쩌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성공하려면 한 우물을 꾸준히 파야 하니. 하지만 성공 못 해도 재미는 있다. 변덕을 부리는 한 나는 앞으로 나아갔고 그 결과는 소설집으로 축적됐다.

“돈보다 뜻있는 일 동경…가난했지만 겁날 건 없었죠.”

꿈 속에서도 작품 생각을 하곤 한다는 구효서 작가(60)는 글을 쓸 때면 늘 배가 고프다고, 힘들지만 묘한 쾌감이 있다고 했다. 서울 변두리에 살며 도시와 시골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경험이 어느 쪽이든 글로 담아낼 수 있는 바탕을 형성해준 듯 하다고 고백했다./사진=홍봉진 기자
-가난하던 시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적 다니던 학교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나올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유년시절 매우 가난했지만, 그랬기에 어차피 돈 버는 재주도 관심도 없었다. 가난이 익숙했으니 겁이 하나도 안 났던 거다.

그땐 그래도 교양주의가 나름 힘을 발휘하던 시대였다. 돈보다는 꿈을 세우고 가치와 의미를 따지는 사람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일종의 사회적 동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돈 못 벌어도 예술 하는 사람을 멋있게 보는 경향도 있었고.

사실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물감 사고 레슨받을 돈이 없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대학입시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반면 글쓰기는 돈이 들지 않았지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 작문시간은 그야말로 내 시간이었다. 수업은 늘 “구효서 나와. 써 온 것 읽어.”로 시작됐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며 글 쓰는데 재미를 느껴서 매일 숙제의 3, 4배씩 써가곤 했다. 수학 시간엔 늘 맞았는데.(웃음)

“석유 닳으니 불 꺼라”…시골마을 자연이 가장 좋은 ‘책’

-어릴 적 독서습관은 어땠나.

▶우리 세대는 책을 읽으려고 해도 ‘석유 닳으니까 불 꺼라’는 말을 듣던 시대에 살았다. ‘뛰지 마라, 배 꺼진다’하고 비슷한 격이다. 학교에도 도서관은 없었고 신발장 옆에 있는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대신 내게는 자연이라는 좋은 책이 있었다. 집 앞 펼쳐진 들과 바다에서 전쟁놀이, 물장난, 술래잡기 등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꽃 이름과 곤충 습성부터 먹을 수 있는 버섯이 뭐고 어떤 맛인지, 어디에 가면 무얼 잡을 수 있는지…. 이런 걸 다 아는 거다. 도시에서 책을 통해 배운 아이들에 비해 매우 실질적인 지식 아닌가. 훗날 이때의 기억을 더듬어 엮은 글이 현대문학에 2년간 연재됐다.

“전운(戰雲) 감돌던 성장기, 한바탕 울고 털어낼 응어리죠”

구효서 작가(60)는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전쟁의 흔적과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우리세대가 한바탕 울고 털어내야 할 응어리"라고 말했다./사진=홍봉진 기자.
-어린시절 기억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줬나.

▶‘베이비붐 세대’는 사실 대책 없는 다산의 피해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표어가 '대한늬우스'에도 나오지 않았나. 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의 반동, 노동력의 절대적 필요, 교육과 피임의 부재.이런 시대적 모순 속에서 정신없이 태어난 세대이니 말이다. 막상 태어나 보니 먹을 건 없고 전쟁복구,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해야 할 노동은 산더미인…. 힘든 성장의 시기였지만 작가에겐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겐 차라리 보석과도 같은 시절이랄 수 밖에.

남북이 휴전된 지 5년 만에 태어나 전쟁의 흔적과 함께 살았다. 사실 나는 1957년생인데 당시엔 영아 사망률이 높아 1년 뒤에 출생신고를 했다. 슬픈 관습 탓에 그 무렵 농촌에서 태어난 57년생 중엔 나처럼 주민 번호가 58년으로 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텃밭에서 뛰놀다가도 6.25 때 묻힌, 채 녹슬지도 않아 반짝거리는 탄피를 발견하기 일쑤였고 철모가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그 비극의 느낌이 생생했다. 학교에선 늘 반공교육을 받고, 또래 친구들이 무장공비에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걸 보며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 내가 정말 직접 겪은 일이 맞나' 싶다.

-작가의 삶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면.

▶첫 창작집인 '노을은 다시 뜨는가'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에 실린 수필들이 그런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들이고 애착을 품은 작품은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및 해방)와 2차세계대전(및 한국전쟁)에 의한 징용, 징병, 분단, 실향, 재일한국인, 반공독재 체제에 의한 투옥과 고문, 유럽으로의 정치적 망명과 입국금지 등을 담은 소설이다.

분단 후 우리의 역사는 국내외 떠돌이를 양산했다. 그것은 나의 세대가 목도하지 않을 수 없던 슬픈 근현대사의 풍경들이다. 젊은 후배 세대들은 또 그런 얘기냐고 식상해 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세대에게는 한바탕 울음으로 털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응어리인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작가…글 한 편 쓰면 살이 쭉쭉 빠져”


-힘든 기억을 더듬는 것, 끊임없이 글로 옮겨내는 작업이 고통스럽지는 않나.

▶30년간 써온 작품의 양으로만 따져도 분명 힘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즐거움이 컸나 보다. 사실 등단 후 전업 작가로 자리 잡고 글 쓰는 일을 어려움 없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고 행운이다. 그래서 행복했다.

걸어 다닐 때도 이 닦을 때도 신발 끈을 묶다가도 글 생각을 한다. 집필을 시작하면 그 작품이 끝날 때까진 워낙 몰입하다 보니 꿈속에도 자주 나타난다. 꿈속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기막힌 것 같아 빨리 깨기만을 바랄 때도 있다. 빨리 일어나서 메모하려고. 하지만 막상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영 신통찮은 이야기인 경우도 많다.(웃음)

글 한 편 쓰고 나면 살이 쭉쭉 빠진다. 내가 엄청 많이 먹는데도 마르지 않았나. 글 덕분이다.(웃음) 소설 쓸 땐 늘 배가 고픈 걸 보면 에너지 소비가 정말 많은가 보다. 힘들지만 묘한 쾌감이 있다.

“서울 변두리 시골 소년…소속감 부재?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있다는 말”

-올해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대표적 문학상을 휩쓸었다. 문단에서 꾸준히 호평받으며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경험이 어느 곳이든 글로 담을 수 있는 정서를 만들었다고 하면 될까. 중학교 2학년 때 대대적인 이농현상(덩달아 도시빈민의 형성)이 있었고 나는 정확히 그 한가운데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도시인에 대한 동경을 품었지만 둘 다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서울 사람도 못 되었다. 그 어정쩡한 성장에서 독특한 심보가 생겼다. 그 심보가 성장기에는 소외와 분노로 표출되었지만 분노는 쉽게 지치게 마련이잖나. 글을 쓰면서 해소됐다. 글을 쓴 것은 다시 생각하건대 참 잘한 일이었다.

특히 20대에 접했던 80년대의 민중미학 이론은 어머니의 갈퀴 같던 손을 처음으로, 부끄러움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보게 했다. 서울 변두리의 변변찮은 삶도 나름 글의 재료로는 꽤 인기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향과 서울,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곳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농경사회의 서사를 구체적 경험으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면서, 이상을 동경하며 과격한 실험 작품까지 신 나게 써내는 도시의 젊은 작가가 됐다. 이렇듯 나름 넓은 정서적 스펙트럼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구효서 작가(60)는 그동안 발표한 작품의 색깔과는 달리 말랑말랑한 소설을 구상 중이다. 비판받을 각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며 두 손을 불끈 쥔 구 작가. 그는 앞으로도 매년 한 편씩, 쉼 없이 작품을 써나갈 계획이다./사진=홍봉진 기자.

“말랑말랑한 소설, 경멸했던 것에 정면으로 부딪힐 것”

-환갑에 도전하고 싶은 일이나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예전엔 가볍고 말랑말랑한 소설을 경멸했다. 감정이라는 것도 인간이 주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념과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늘 진지하고 심각한 것만 써왔는데 생각을 바꿔 먹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작업 방법이자 삶의 방식인데, 편 가르기 하고 한쪽을 적대시하지 말고 내가 그 안에 직접 들어가 보자고 결심했다.

살다 보면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울 때 나오듯 가벼운 웃음도 필요하지 않나. 인절미처럼 말랑말랑한. 1년에 한 권씩을 목표로 써나갈 계획이다. 시골 공간을 배경으로, 악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마음에 피로감이 없고 여유를 주는 그런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혹자는 구효서가 미쳤구나, 비판할지도 모른다. 각오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다.

<구효서 작가 연보>

△1957년 강화 출생
△1987년 단편 '마디'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0년 첫 소설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 출간
△1994년 단편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제2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0년 첫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출간
△2005년 단편 '소금가마니'로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6년 단편 '명두'로 황순원 문학상 수상
△2007년 단편 '시계가 걸렸던 자리'로 한무숙문학상 수상, 단편 '조율'로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2008년 장편 '나가사키 파파' 출간 및 대산문학상 수상
△2014년 단편집 '별명의 달인'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2017년 중편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수상, 단편집 '아닌 계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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