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데이트레이딩…"점심에 30만원 벌었어"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 2017.12.24 08:00

[행동재무학]<204>초단타가 난무하는 가상통화 거래

편집자주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비트코인 데이트레이딩 하냐?”

요즘 어딜 가나 비트코인 얘기를 듣는다. 최근 연말을 맞아 참석한 대학동기 모임에서도 대화의 주제가 비트코인이었다. 필자는 “여기서도 또 비트코인 얘기냐”며 웃었다.

동기 중 한 명이 비트코인으로 돈을 꽤나 벌었다고 자랑을 하면서 시작된 비트코인 얘기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사실 그 동기는 몇 달 전 모임에서 비트코인 투자를 권유했었다. 따라서 연말 모임에 나온 그 친구는 “그때 내 말 듣고 투자했더라면 수천만원을 벌었을 것”이라며 우쭐해 했다.

이날도 전날 밤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를 매입한 뒤 매도 주문을 냈더니 밤새 체결돼 돈을 벌었다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전일 비트코인 캐시는 미국 대표 가상통화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에 상장되면서 아침 무렵 가격이 70%나 급등했다.

그러자 또 다른 동기는 “너, 비트코인 데이트레이딩 하냐?”고 질문을 던졌다. 데이트레이딩은 단기 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주가흐름을 분(分), 초(秒) 단위로 지켜보며 주식을 사고파는 매매행위다. 우리나라 증권가에선 보통 '단타'로 통용되고,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사람을 데이트레이더 혹은 단타족이라고 부른다.

동기 친구는 점심식사 도중에도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가상통화 시세를 살펴봤다.

실제로 그는 동기 모임 직전에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비트코인 가격은 2000만원 대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일어나는 자리에서 그는 “비트코인 가격이 2100만원이 넘었어. 점심시간 동안 30만원 벌었네”라며 자랑을 했다. 점심식사는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그 친구가 샀다.

그러나 나머지 동기들 가운데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친구는 없었다. 심지어 “그 잘 나간다는 주식도 안 하는데 무슨 비트코인이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동기도 있었다.

물론 비트코인에 대해 관심은 조금씩 갖고 있었다. 회사 동료 가운데 비트코인으로 수십억원을 벌어 보안장치가 있는 USB에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동기들 사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저 ‘누군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겠지’정도로 ‘나와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과거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을 경험해 본 친구들이기에 지금의 비트코인 버블도 그저 짧게 유행처럼 지나가는 쏠림 현상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도 어느 모임에 나가도 온통 주식 얘기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종목은 바로 새롬기술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주식시장을 경험한 이들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이름이다.


전 신영증권 리서치 센터장과 현대자산운용 CIO를 지낸 장득수씨는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새롬기술의 위세를 당해내지 못했고, 새롬기술의 움직임이 바로 시장 자체의 움직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새롬기술이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고, 새롬기술의 주가를 파악하지 않고는 주식시장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새롬기술 신드롬’은 단지 그 자체로만 그치지 않고 코스닥 시장 전체로 퍼졌다. 새롬기술 때문에 “아직도 거래소 시장에 투자하세요?”란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다.

코스닥 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몰려 코스닥 거래대금이 거래소 거래대금을 추월했고, 급기야 거래소 거래대금의 거의 두 배에 달하기도 했다. 코스닥 시장에는 20여 일만에 주가가 20배, 4개월간 90배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자 대다수 투자자들은 ‘제2의 새롬기술’을 찾으려고 코스닥 시장을 배회했고, 아예 기업공개 전 장외에서 주식을 사놓고 기다리겠다는 심산으로 장외시장과 프리코스닥 시장으로 발길을 옮긴 이도 상당수에 달했다.

회사에 출근해선 데이트레이딩, 오후에는 벤처기업을 찾아나서는 게 직장인들의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 돼 버렸고, 100만~200만원 정도 장외종목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미래가 없는 답답한 친구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비트코인은 매일같이 언론에 나오고 있고, 비트코인이 급등하자 ‘제2의 비트코인’을 노리고 가상통화거래소 상장 전 장외에서 미리 디지털 코인을 사두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모든 디지털 코인이 종류나 특성에 상관없이 비트코인 가격(2000만원 대)과 동일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코인 갯수는 1300개가 넘었고, 국내 최대 가상통화거래소인 빗썸에 상장된 디지털 코인 종류도 11종에 달한다. 그리고 100만~200만원 정도 디지털 코인에 투자하지 않으면 ‘올드 보이’로 여긴다.

과거 주식 데이트레이딩 방법을 안내하던 사이트가 범람했듯이, 지금은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로 데이트레이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인기다.

과거엔 "아직도 거래소 시장에 투자하세요?"라며 코스닥에 몰렸다면, 지금은 "아직도 주식 하세요?"라며 디지털 코인 시장에 우글거린다.

그리고 과거엔 출근해서 PC로 주식을 데이트레이딩 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을 단타매매 한다. 과거 닷컴 버블 때와 비교하면, 시대와 투자대상만 바뀌었지 돈을 쫓는 군상들의 모습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주식을 데이트레이딩하는 순간 더 이상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듯이, 지금의 가상통화 거래도 정상적이지 않다. 온통 초단기 차익만을 노리고 뛰어든 초단타족이 난무하는 혼탁한 투기판이다.

지금의 가상통화 시장은 디지털 코인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도박이다. 가격변동성이 클수록 초단타를 노리는 데이트레이더는 더욱 몰려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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