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이 사회 지킴이에 감사하자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2017.12.21 04:35
한겨울 오후가 되면 찬바람이 후미진 골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 한복판의 네거리에서도 윙윙거리며 우리 곁을 맴돌고, 이맘때면 우리는 너나없이 따뜻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그곳이 찻집이든 음식점이든 상관없이 그저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한 그곳에서 우리는 따뜻함이 주는 행복을 여유롭게 즐기곤 한다. 언 땅 위의 찬바람을 피해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집으로 항하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서 세밑의 한때를 넉넉하게 누리곤 한다.

비록 날씨는 춥고 거칠어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은 오히려 이 계절에 더 많아 보인다. 지나온 한 해의 수고로움을 기억하며 칭찬과 감사의 행사가 줄을 잇는다.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다양한 시상식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단체나 조직도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례를 갖는다. 이러한 자리에서 사람들이 고마운 사람으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대상 중 하나가 가족이다. 비단 이것이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문화에서 가족은 참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에 너와 나의 구별이 없을 정도로 정서적 유대감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가족은 개별적으로 구분된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 그 자체다. 특히 어머니는 자식과의 일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 가슴이 허전할 때 우리 가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어머니인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누군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만큼 우리 삶에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이런 가족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창 밖의 겨울바람을 피해 온기가 흐르는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밖에서 애쓰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안정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욕구의 충족보다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덕분이다. 섣달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경찰관, 소방관, 미화원, 그리고 깊은 산과 바다, 하늘에서 온몸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과 같은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가 없다면 우리는 아마도 저 모진 바람을 고스란히 안고 이 겨울을 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과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들은 모두 다 우리의 영웅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무리 귀하고 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늘 누릴 수 있으면 우리는 그 고마움을 쉽사리 잊는다는 것이다. 온기가 흐르는 지금의 공간을 벗어나 창 밖의 찬바람을 그대로 맞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원한다면 그들과 맺는 관계를 지금과 달리해야 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영웅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 그 모든 책임을 국가가 떠안아야 한다. 국가는 그들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국민은 그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 줄 때, 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꺼이 자문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이다.

겨울 찬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외롭게 만든다. 아무리 옷을 여미어도 어느새 그 틈새를 찾아 파고들곤 하는 것이 한겨울의 찬바람이다. 그 찬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주는 사람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 사회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 자신을 따뜻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언 마음도 훈훈하게 녹여주는 비법이다. 엄동설한 섣달에도 우리를 위해 창 밖에서 고생하는 이 사회 지킴이들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기를 기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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