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해외 시장, 그리고 상도동 영도시장의 비극

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 2018.01.01 06:36

[전통을 혁신하다 시장의 대변신1회-①]전통시장의 위기

편집자주 | 같은 전통시장이지만 너무나 다르다. 어떤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장사도 잘 된다. 반면 어떤 시장은 고객의 발길이 뚝 끊어져 내리막길을 걷는다. 잘 나가는 시장과 망해가는 시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특유의 스토리로 무장한 '특별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전통시장이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일상의 장소이자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성공한 국내외 전통시장을 방문해 성공한 시장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전통시장 성공의 키워드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카테리나시장 입구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위치한 산타카테리나 시장.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람블라거리에 위치한 보케리아 시장과 달리 바르셀로나 현지 주민들이 주로 찾는 생활 밀착형 시장이다.

산타카테리나 시장도 우리나라의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위기를 겪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산타카테리나 시장의 시설이 낙후돼 노인들만 간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시장이 쇠퇴하고 상인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상인들과 바르셀로나시 정부가 손을 잡고 변화를 주도하고 나섰다. 시는 상인들과 함께 시장 리모델링에 돌입했다. 당초 공사기간이 2년이었지만 유물이 발견되고 지연되면서 6년이란 기간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은 장사를 할 수 없거나 잠시 이전하는 불편과 희생을 묵묵히 감수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카테리나시장 내부.


리모델링은 성공적이었다. 시장은 마치 유명 미술관과 같은 예술적 외관으로 변신했다. 고객들은 파스텔 색조의 물결치는 지붕을 좋아했다. 미술관 같은 뉴욕 첼시마켓처럼 '예술'과 '문화'를 덧입힌 산타카테리나 시장은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을 다시 시장으로 불러 모았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현대화도 입혔다. 대형마트와 경쟁할 대형 주차장을 확보했고, 이메일·전화 주문 배송제도 도입했다. 신선한 식품 등 주문을 곧바로 당일 배송하는 시스템도 갖춰 바쁜 직장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와 함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신선한 마늘을 다져 소량 포장하는 등 대형마트처럼 재료를 가공, 판매했다. 더욱 놀랄 만한 점은 시장엔 대형마트도 함께 입점해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 상인들이 판매하지 않는 공산품을 판매하면서 시장과 공존한다. 상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명의 현지 주민이 더 올 수 있도록 매월 다양한 축제 이벤트를 여는 것을 잊지 않는다.

12월 4일 오후 방문한 일본 오사카 구로몬 시장 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관광객들이 정보를 찾거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시에 위치한 구로몬 시장도 변화를 통해 밑바닥을 탈출한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지난 199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되고 인구가 급속도로 고령화 되자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혀 버렸다. 경쟁 상대인 대형마트의 등장도 시장 상황을 악화시켰다. 고객들이 급감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상인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구로몬시장 상인들은 관광객을 맞을 환경을 스스로 준비해 나가는 등 변화를 자발적으로 맞이했다. 시장 내 아케이드(아치형 지붕)를 설치하고 바닥도 깔끔한 타일을 깔았다. 각국 언어로 시장 안내지도와 표지판, 책자, 현수막 등을 준비했다. 안내센터겸 휴게실과 무료 와이파이 환경도 갖췄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하기 쉽도록 상품을 각국 언어와 사진으로 구성해 책자를 만들었다.

각종 식자재를 판매하던 전통적인 시장에서 관광객을 위해 먹거리를 개발, '푸드코트'와 같은 환경을 갖춘 것도 신의 한 수였다. 꼬치류, 대게, 스시, 참치덮밥 등 다양한 먹거리는 구로몬시장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상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11년부터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이제는 구로몬시장은 오사카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관광지가 됐다.


대만 스린야시장은 2700여개 상점이 모여있는 대규모 전통시장이다. 스린야시장은 철저하게 젊은이들을 공략함으로써 시장이 회생할 계기를 마련했다. 젊은층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타깃으로 집중 개발하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을 시장으로 돌렸다. 먹거리의 호황은 의류 등 다른 분야 상점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스린야시장을 방문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형마트에선 경험할 수 없는 쇼핑과 식도락의 조화다. 곱창과 면을 함께 숟가락으로 건져 먹는 곱창국수인 '아쭝멘션'(阿宗麵線), 굴을 전처럼 부친 '커짜이지엔'(蚵仔煎), 대만식 닭튀김 '지파이'(雞排) 등 다양한 식도락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쑤원산 스린야시장 총상인연합회장은 "야시장은 대만사람들에겐 생활과도 같다"며 "먹거리를 즐기면서 쇼핑을 하는 것이 힐링"이라고 말했다.

빼곡했던 상점이 대부분 공실이 돼 스산한 분위기마저 풍기는 25일 영도시장의 풍경/사진=김경환


이에 비해 한때 동작구를 대표하던 전통시장인 영도시장 사례는 전통시장 복원 노력에 대해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옛부터 교통 요지로 일컬어지는 장승배기(상도동)에 위치한 영도시장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최적지였다. 장승배기는 과거 정조 행궁 당시 거쳐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영도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점포수가 200개를 넘어서면서 평일에도 장을 보러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인근 주택가가 아파트로 재개발 되기 시작하고 인근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영도시장은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인근 상도4동이 도시재생 시범사업지에 선정될 만큼 활력을 잃은 점도 영도시장의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교통 요지에 위치한 점을 맹신해 떠난 고객을 다시 유치할 변화를 게을리 한 영향도 컸다.

대부분이 공실로 텅텅 빈 25일 영도시장의 풍경. 1980년대엔 공실이 없고 매대마다 상인들과 고객들로 넘쳐났다./사진=김경환

최근 방문한 영도시장의 현실은 안타까웠다. 40여개에 불과한 상점과 매대가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고객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장 인근 거리도 활력을 잃었다. 동작구 관계자는 "영도시장이 쇠퇴하면서 공실률이 70%에 달할 정도로 슬럼화가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 꾸준한 변화를 모색해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근 성대시장과 대조적이다.

결국 고객들에게 외면 받은 영도시장은 오는 2021년 완공될 동작구청 복합행정타운 부지로 편입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위기가 도래했지만 변화에 실패한 영도시장 사례는 전통시장의 복원에 많은 과제를 던진다.

머니투데이가 취재한 해외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내처럼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인 방향성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의 경쟁력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지하고 고객을 유인할 특별함으로 새롭게 무장한 시장만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고 있다.


특별취재팀=김경환, 진달래, 최민지, 이동우, 방윤영, 김민중,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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