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사진 기자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 2017.12.19 05:00
사진 기자들은 자주 맞는다. 시위 현장에서 때론 경찰에게, 때론 시위대에 맞는 게 일이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탄핵 국면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목도했다. 펜 기자(글 쓰는 기자)는 잠시 위험을 피할 수 있지만 그러지도 못한다. 사진기자는 현장을 떠나서는 취재할 수 없다. 이들이 잠시 몸을 피해 놓친 현장은 그냥 속절없이 사라져버린다.

찰나의 순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다 보면 언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이를 무릅쓰고 한 장의 사진을 기사에 담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항상 크고 작은 부상에 노출된다. 미셸 롤랑(1972년 퓰리처상 수상)은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사진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리는 것”이라고. 이를 위해 사진기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 한 장의 사진은 때론 수 천자의 글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본질을 관통한다. 조그마한 인화지 한 장에 담긴 순간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꿈쩍도 않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네이팜탄을 맞고 혼비백산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포착한 ‘전쟁의 테러’는 미국 내 반전 여론을 일으키며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했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 흘리던 한 장의 사진은 한국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보다 쉽게 감정이입을 가능케 하는 사진의 속성도 있지만, 현장을 떠나지 않고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사진기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행사 취재 중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일을 두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맞을 짓을 했다” “맞아도 싸다” 등 동정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이 쏟아진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정당방위’ 운운하며 중국 경호원들을 옹호하다 사과까지 했다.

대통령의 중국 순방에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사전에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근접 취재 허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중국 측으로부터 현장 출입증인 ‘비표’도 발급받았다. 협소한 장소, 경호 문제 등으로 순번(풀·POOL)을 정해 현장에 나간 기자들이 특종 경쟁을 한 것도 아니다.

한국 기자들을 대표해 대통령 사진을 찍고 이를 독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대통령 동선에 따라 움직였어야 하는데도 중국 경호원들이 부당하게 취재를 막았고,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 폭력이 발생했다.


갑자기 취재를 막아야 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졌어도 그냥 밀어내며 제지하면 될 일이었다. 기자들을 행사장 밖 복도로 끌고 가 넘어뜨리고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했다. 누가 봐도 중국 경호원들의 과잉 대응이 명백하다. 중국 측의 공식 사과를 받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현장을 지키는데 충실했던 이들에게 ‘고소하다’ ‘속시원하다’는 조롱과 비난이 쏟아진다. 특히 보수층보다 진보를 자처하는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에서 더욱 심하다는 게 아이러니다. 지난 보수정권 9년간 그렇게 ‘언론 자유’ 수호를 외치지 않았나. 이 기간 기자집단에 켜켜이 쌓인 불신에 ‘홀대론’이란 프레임으로 순방 성과를 희석하고 비판하는 보수 정당·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은 곤란하다. "몽둥이로 맞았어야 한다"는 조소 속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아스팔트 보수’의 외침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인식은 문 대통령과의 의중과도 동떨어졌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고, 종국에는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 자유의 개념조차 없어 언론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큰 국가에 있었다 해도 사진 기자들이 집단폭행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 폭행당한 기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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