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내 발길에 채여 스러졌던 당신이거나 꽃이거나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17.12.16 08:27

<130> 최영욱 시인 ‘다시, 평사리’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을 닮아가고,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 영호남이 만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는 최영욱(1957~ ) 시인의 두 번째 개인시집 ‘다시, 평사리’는 그대로 자연이다. 스스로 그러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를 낮출 줄 아는 겸허와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양보하는 겸양을 안다. 겸허(謙虛)와 겸양(謙讓)이 합수하여 흐르는 것이 염치(廉恥)가 아닐까.

차밭에 든다
든다는 것은 인기척이다
늘 먼저 와 있는 손님 때문이기도 할 터
고라니가 주인일 때도 그렇고
멧돼지나 뱁새의 둥지도 그렇다
그러므로 늘 “듭니다”라고 고함치지만
이는 사람의 말이라서
그들은 언제나 나를 기겁하게 하고
손님과 손님들이
서로가 늘 놀라는 차밭

그래도 차밭에 엎드리면 세상은 멀어
아득한데
차밭에 무릎 꿇으면 찻잎은 더욱 선명하여
연두로 물결치는데
그 연두색 멀미에 열이 뜨는데
달뜬 손놀림은 허방을 짚기 일쑤

찻잎의 목을 꺾는다는 것은
한 모금의 차를 얻기 위함이나
염치를 가르쳐준 잎이기도 하여

봄날의 차밭은
나만의 법당이었다.
- ‘차밭 법당 1’ 전문

인삼은 사람의 발소리로 자란다고 한다. 아마도 차는, 야생차는 들짐승과 날짐승의 발소리로 자라지 않을까. 차밭은 사람과 짐승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사람도 손님인지라 먼저 그곳에 터를 잡은 짐승들이 놀라지 않도록 “듭니다” 고함을 치고 나서야 차밭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말”인지라 미처 알아듣지 못한, 둥지를 지키는 짐승들이 있어 “손님과 손님들”이 함께 놀란다. “차밭에 엎드리면” 속세를 떠난 듯 세상은 아득하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잊는다. 그대로 ‘법당’이 된다.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찻잎의 목을 꺾”어도 결국 살생을 금하는 불가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인지라 그저 염치없을 뿐이다.

제4부 ‘차밭 법당’은 차를 따고, 덖고, 비비고, 말리고, 맛내고, 우리고, 나누는 과정을 수행하는 과정처럼 연작시로 썼다. 곡우에 다가설수록 봄날의 차밭은 소란하지만 시인은 욕심내지 않는다. 330도의 뜨거운 가마솥에 찻잎을 덖을 때 시인은 같이 아파한다. 덖은 찻잎을 손으로 비비는 것은 찻잎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일인지라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차를 말리는 것은 고행이자 수행이다. 상처가 아무는 것을 기다리는 안쓰러운 기다림이다. 약한 불에 오래오래 상처 난 몸들을 쓰다듬는 맛내기 순간은 “화엄 같은 시간”이다. 비로소 다관에 끓는 물을 붓고 차를 우리면 찻잎이 몸을 펴고 그 향에 홀리면 “염치를 잃”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경계한다. 차 한 줌, 다향을 나누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뎁히는 일”이다. 차 연작시를 읽으면 “그만 겸손해져/ 합장”(‘감로甘露’)을 하게 된다.

느릿느릿 읽어야 한다

사릿물이 백사장으로 차오르기 전
바닥 모래를 깊이 적시듯 적셔 마침내
물아래로 잠기는 모래밭처럼
느리고 깊게 읽어야 한다

피아골도 잔돌평전도 읽어내야 하며 그들이
쓰다듬은 모든 세월도 반드시 읽어내야 한다
이것저것 나누지 않음도 깊숙이 받아들임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차안과 피안이 그렇고 누군가가 할퀴고 간
무너진 하상도 기억 속에서 불러내 읽어야 한다

소리 없는 것들을 들어야 하고 윤슬의 부대낌도 시리게
필사해야만 한다 저무는 것들이사 일별로 보낸다지만
흐르는 것에는 안겨야 하는 것이다
안겨 같이 흐를 때
제대로 같이 가는 것이다 물이 그려낸 곡선도 유장함도
남으로 길을 잡아 바다로 스며들 때까지, 물에 물을
더한 물에 서린 긴 이야기를 읽어내야만 한다

느릿느릿 오래 깊이 읽어야만 한다.
- ‘강의 독법’ 전문

최영욱(2001년 ‘제3의 문학’으로 등단) 시인은 늘 허기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섬진강으로 간다. 봄밤 “저녁놀을 받아내는 윤슬”(‘평사리 봄밤을 위하여’)에 눈길을 주는 시인에게는 강은 아프다. 위로를 받기 위해 찾은 강은 오히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른다. 강은 “1598년 장군의 피 묻은 갑옷”(‘노량포구’)과 “강을 넘어 오던 죽창”(‘화심나루’), “동학이 건너가고/ 파르티잔들이 건너와 지리산으로 들던”(‘화개나루’) 비극의 역사의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강은 그냥 무심히 흐르는 곳이 아니라 그대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기에 시인은 “가슴 저려/ 차라리 깊이 미안”(이하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해 하며, “자연 앞에서의 겸손”을 배운다. 시인은 “느리고 깊게” 강을 읽는다. “피아골도 잔돌평전도 읽어내”고, “그들이/ 쓰다듬은 모든 세월도 반드시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그리움은 섬진강 끝 남해에 닿는다. “길 없는 길”(이후 ‘갯바위’)인 “백련포구에서 앵강만”을 가로질러 가면 노도가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서려 있는 노도에는 “꿈속에서 그려내는 젊디젊은 아버님의 얼굴이/ 몸져누우셨다는 어머님의 늙고 야윈 얼굴”(‘노도에서-꿈’)이 있다. 물 건너, 꿈속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부모님은 시인의 마음속 노도에 살고 있다. 섬진강과 함께 허기질 때마다 가는 곳이 남해 노도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시인의 겸허와 겸양은 지리산의 숨소리와 섬진강의 강물소리로 이어져 있고, 봄밤의 꽃에서 절정을 이룬다. 표제시 ‘신’은 “저울 위에 올려 있는/ 운동화 한 켤레”를 통해 생명을 경외와 삶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빼어난 시다. “구백 그램”밖에 안 되는 운동화에 “밟히고 짓이겨진 꽃들이거나 구르던 이끼 낀 돌멩이거나/ 오지 않는 사람에게로 뛰다 디딘 허방”은 결국 내가 살아가면서 쌓은 죄업(罪業)의 흔적이다. 내가 살면서 자연과 타인에게 준 상처다. 염치를 중시하는 시인에게 산과 물은 “상처가 하늘의 중심”(‘천원天元’)임을 알게 해준 큰 스승일 것이다.

◇다시, 평사리=최영욱 지음. 애지 펴냄. 120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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