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 여성의 삶

안은별(인터뷰집 ‘IMF 키즈의 생애’ 저자) ize 기자 | 2017.12.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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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죠시료쿠(女子力-여자력)’라는 말이 있다. 2009년 처음 등장해 일상어로 완전히 정착한 이 말은 “여성이 스스로의 생활 방식을 향상시키는 힘,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힘”을 뜻한다(デジタル大辞泉). 좀 더 구체적으로 “여성스러운 태도나 용모를 중히 여기는 것, 여성 특유의 감각과 능력을 생활이나 직업에서 살리는 것 등”을 가리키며 주로 네일아트 등의 미용을 챙기는 정도나 또는 요리나 살림 능력과 연관되어 쓰인다. 여자들끼리의 모임을 가리키는 ‘죠시카이(女子会)’란 말도 있다. 여자력은 몰라도 여자회 정도는 중립적인 표현 아닌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에는 제자리와 역할이 있으며 함부로 벗어나는 것은 실례라고 참 다양한 방식으로 말해오는 사회에서 성별을 특정하는 이름의 행동 양식에 의미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간 술집에선 기름진 육식 계열의 안주를 푸른 색 글자로 쓴 ‘남자 메뉴판’과 산뜻하고 가벼운 종류의 안주를 분홍색 글자로 쓴 ‘여자 메뉴판’을 함께 내놨다.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건 매일 같이 이런 여자의 자리, 여자라는 구분을 마주치고 질색하다가 ‘그게 뭐 어때서?’라는 눈빛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놓고 보고 싶은 것이 여학생이 20%에 불과한 도쿄대학(학부)의 기형적인 성비다. 학교 측이 여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기는커녕 적극적인 입학 장려책을 펴고 있음에도 이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하면 이 학교가 주로 제시하는 진로가 사회에서 여성에게 권장되는 길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 인생의 종착점은 결혼이니까 학력은 상관없지. 도쿄대의 못생긴 애보다 귀엽게 생긴 고졸이 좋은 인생을 살거든.” ‘여성 재수생은 왜 드문가?’라는 블로그 포스트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한편 많은 일본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유보없이 직장을 그만두며 출산 후에는 가계를 보조하는 주부의 단시간 노동의 세계로 편입된다. 이 여성 단시간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44.3% 수준이며, 이를 정당화하며 떠받치는 것이 노동자로서보다 남성의 피부양 배우자인 아내 자격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는 일본 복지체제 내 여성의 위치다. 요약하자면 여성을 특정 방향으로 ‘살아지게’ 만드는 구조, 고정된 성역할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낫게 만드는 구조가 있다. 남성부양자의 아내 자격을 얻는 것이 사회에서 보호받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길이고 이 경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지는 배제되는데 이것이 여성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문제(즉 ‘힘’)인 것처럼 둔갑된다.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20년 전인 1990년대 중반 전후 성평등에 대한 국제 기준의 확립에 힘입어 제도적 차원과 사람들의 의식 차원 양쪽에서 일본 사회의 젠더 평등을 재고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95년 세계여성회의 이후 총리부는 ‘남녀공동참획(参画)2000플랜’을 책정했고 교육계는 ‘젠더프리’라는 용어를 도입해 성별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성을 포괄하는 교육을 논의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1999년 제정된 ‘남녀공동참획기본법’은 기존의 그동안 사회 제도가 성별 분업과 성역할의 고정화에 의해 불공정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인식하고 “특정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온갖 개인의 생활과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 시스템의 구축”을 제도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반대파의 맹렬한 공격에 부딪치게 된다. “젠더프리가 과도한 성교육을 제공해 성교를 장려한다.” “전업주부를 부정하는 등 타인의 생활 방식에 개입한다.” “’결과의 평등’의 주장은 공산주의 사상이다.” 등의 기가 막힌 비판을 쏟아낸 것은 ‘산케이신문’ 등의 보수 논단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역사 교과서 문제로 잘 알려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우익 단체들의 네트워크였다. 조직적인 선동은 인터넷 상에서 젊은 남성들을 빨아들였고 이들은 페미니스트를 ‘페미나치’라 부르며 공격했다. 이를 ‘여론’으로 포획한 자민당은 2005년 ‘과도한 성교육과 젠더프리 교육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 팀’을 구상해 아베 신조에게 수장을 맡긴다. 애초엔 그 주장의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백래시 파가 지자체부터 중앙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영향을 미쳤고 일본의 젠더 평등 정책과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을 주춤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젠더 평등 정책과 백래시의 배경’이라는 글에서 페미니즘 정치운동가 후나바시 구니코는 그들의 조직적 반격의 근저에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의 가부장제적/국가주의적 전환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기본법’이 제정된 1999년은 ‘새역모’가 발족한 해이며, 이 법이 성립된 145회 국회에서는 국기/국가(國歌)법 등의 배외주의적 법률도 함께 성립했다. “군사화를 떠받치는 것은 가부장적 ‘남자다움’이며 ‘남자다움’을 떠받치는 것은 ‘여자다움’에 있”으므로, 성별 분업과 성역할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능케 만들려는 ‘기본법’과 ‘젠더프리’는 맹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2001년 새역모의 한 회원이 중학 교과서 채택 이슈가 끝나자마자 “내게 있어 ‘역사’는 이미 메인 테마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부부 별성과 페미니즘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안티 페미니즘이 군사국가화와 관련된 다른 배싱과 교환 가능한 항이었던 동시에 그 모든 것과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경제 구조 전환 속에서 불확실한 세계로 내몰린 ‘평범한 사람(일반인)’들의 불안이 이런 흐름의 배경에 자리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는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나 ‘거리로 나온 넷우익’ 등 일본의 우경화를 다룬 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분석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일반인’은 그들이 자처하는 상식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약자를 혐오하는 일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정상성의 외피라는 건 명백하다. 그들 ‘일반인’들이 사수하려는 ‘남자는 밖에서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가족 모델,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를 ‘정상’으로 했던 모델은 그들을 불안으로 내몰았다는 저성장으로의 경제 구조 전환과 함께 그 근간부터 붕괴되어 왔다. 무엇보다 애초에 그것을 ‘일반’으로 나타나게 했던, 전후 고도성장과 기업의 종신고용제 속 남성-생계부양자 가족 모델이 여성을 희생시키는 구조 위에 성립했던 바, ‘일반’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되찾아야 할 것도 아니다. ‘불안’해서 ‘우경화’된다는 그들은 구조의 희생양이 아니라 구조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이들인 셈이다. 저성장 사회를 정확하게 인식하다면 이제라도 고정된 성역할에 의거한 가족 모델을 상대화하고 여성과 남성이 직업적으로 동등한 기회를 갖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노동, 사회보장 체제를 정비하는 페미니즘적 처방밖에는 답이 없다. 지금 일본에 필요한 ‘여자력’이 있다면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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