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어른'도 사라진 보수

머니투데이 안재용 기자 | 2017.12.14 04:42

[the300][보수의몰락 ③-멋없는 보수]박정희 이후 '롤모델' 없는 보수.. "철학의 빈곤이 이전투구 불러"

외환위기의 국난 속 1997년말 치러진 16대 대선.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돌풍의 주인공이었다. 국민신당 대선후보로 나선 그가 내세운 마케팅 포인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닮은 외모였다. 이인제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잘 살게 만든 박정희 대통령처럼 외환위기를 극복해내겠다"며 '박정희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CEO(최고경영자)의 이미지를 '박정희의 귀환'으로 연결시켜 보수 지지층에 어필하는 데 성공, 대통령에 당선됐다. 뒤이어 진짜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
'보수'는 박정희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 보수 정치인은 자신만의 리더십을 만들지 못했다.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 내기보다 후계자를 자처하는데 열중했다. 1980년대 이후 보수는 박정희의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반면 보수의 반대편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장준하, 김근태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각각 대변하는 가치도 차별화된다. 김대중이 민주화와 평화를 상징한다면 노무현은 탈권위, 지역주의 타파의 대변자다. 장준하, 김근태 등으로부터 '자유와 민주를 위해 희생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이는 보수 진영내 '철학의 빈곤'을 상징한다. 보수는 자신들을 대표할 가치로 '번영' 이외의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본래 보수의 가치였어야 할 '자유'는 이미 진보에게 빼앗겼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정희 이외에는 보수의 가치를 담아낼 표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가치의 부재가 보수를 이전투구 집단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유지해온 번영의 이미지도 퇴색했다.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은 경제 부문에서 자신들이 진보에 비해 유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가 경제를 위해 내놓은 대표적 카드는 4대강 사업에 20조원이 넘는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토건모델에 불과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창조경제는 실체가 없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지난 70년간의 보수정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다는 점이 쌓여 실망과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며 "21세기형 보수로 혁신하지 않으면 (보수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현재의 보수 진영에 영웅은커녕 '어른'도 사라졌다. 보수 지지층이 기대하는 품위, 품격 있는 모습의 지도자는 찾기 힘들다. ‘희생의 아이콘’도 없다. 막말과 아귀다툼만이 남은 보수의 민낯에 사람들은 지지를 거뒀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보수정권의 태도는 지지자들이 보수라고 믿어왔던 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온 단초였다.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준다는 보수의 가치와 믿음이 흔들렸다.
지난해 20대 총선 과정에서 나타난 집권여당의 공천 파동, '옥새런' 사건은 집권 세력의 무책임한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갈등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갈등을 조정할 당 대표가 직인을 들고 도망치는 현실에 보수 지지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적어도 수권 능력에서는 진보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보수의 자존심은 산산조각났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막말 등은 여전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보수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천막당사나 총선불출마처럼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이면 달라질 수 있다”면서 "그런데 희생하는 모습을 안보이고 계속 상대만 욕하고 하면 합리적 보수들은 지금 정치권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살신성인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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