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랑 해봤어?" 우리은행은 묻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 2017.12.15 04:45

[세기의 짝꿍]<6>-①11개 스타트업 육성하는 우리銀 '위비핀테크Lab'

#에이젠글로벌은 AI(인공지능) 딥러닝 기술로 금융사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소비자의 행동양상을 예측한다. 은행이나 카드사, 보험사 등 금융사가 에이젠의 기술을 활용하면 고객 맞춤형 상품과 금리 제공, 연체 확률을 포함한 리스크 관리 등 상품별, 기능별, 대상별 예측모델 구축이 가능해진다.

에이젠글로벌은 금융권 경력자와 IT(정보기술) 개발자들이 모여 지난해 2월에 창업했다. 에이젠글로벌의 강정석 대표는 씨티그룹에서, 장혜리 이사는 삼성카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장 이사는 사업 초기를 떠올리며 "모든 게 다 어려웠다"고 말했다. 몸 담은 적이 있는 금융권이 '이렇게니 보수적이었나'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특히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장 이사는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에 사업을 설명할 기회는 많이 있었지만 국내 다른 금융회사에 적용됐는지를 우선 확인했다"며 "미팅이 성사돼도 '어디랑 같이 해봤어요?'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금융권은 다른 어느 업계보다도 보안에 무게를 둬야 한다. 신생기업이 제안하는 사업에 선뜻 화답하지 못하고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다른 금융사에 적용한 경험을 묻는 반응.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위비핀테크랩'(Lab) 1기 심사 과정에서 에이젠글로벌에 '어디랑 해 봤어요?'라고 묻지 않았다.


#엘핀은 위치기반 모바일 인증 서비스지만 GPS(위성항법장치) 신호를 활용하는 대신 사용자 휴대폰에서 이동통신 기지국으로 송신되는 위치정보를 이용한다. 현재 주로 쓰이는 인증 방식인 공인인증서나 휴대폰 인증번호 등은 해킹을 통한 탈취 우려가 있지만 엘핀의 인증 기술은 실제 사용자 위치를 확인하는데다 이동할 때마다 위치 정보가 변해 보안 수준이 더 높다.

박영경 엘핀 대표는 창업 당시부터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과 게임업체, 자율주행 차량 등을 엘핀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 업권으로 삼았고 올초 위비핀테크랩 2기의 문을 두드렸다.

박 대표는 "금융권에 기술을 적용하려면 은행권의 시스템이나 분위기를 잘 알아야 하는데 엘핀 직원들은 금융 분야를 잘 몰라 투자자들에게 기술을 이해시키기도 어려웠다"며 "우리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인 '위비뱅크'를 접하고 가장 핀테크 분야에 열려 있는 은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연을 맺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이젠글로벌과 엘핀은 우리은행의 위비핀테크랩에 입주한 스타트업이다. 핀테크가 은행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8월 유망 핀테크기업들을 발굴해 육성하고 향후 협업까지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타트업이 입주해 일할 수 있는 위비핀테크랩의 문을 열었다.

위비핀테크랩은 다른 은행들의 핀테크 기업 육성 프로그램과 비교해 더 창업 초기 기업들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은행은 위비핀테크랩을 통해 초기 스타트업의 사업성을 평가하고 투자 유치와 마케팅 등을 지원해 더 높은 성장 단계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담당한다. .


현재 위비핀테크랩 입주 기업은 에이젠글로벌과 엘핀을 포함해 △한국신용데이터 △앤톡 △매너카 △다움소프트 △비네핏 △턴온 △엠로보 △트라이월드홀딩스 △더코더 등 총 11곳이다. 지난해 8월에 입주한 1기 6개 기업은 물론 올해 4월에 입주한 2기 5개 기업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말 기준 위비핀테크랩 입주 기업들의 누적 매출은 7억5800만원이며 정부지원 사업 21건(12억7600만원 규모)을 따냈다.



투자 유치는 2기보다 사업화가 한 단계 더 진행된 1기 기업들을 중심으로 총 64억2000만원을 달성했다. 이중 한국신용데이터가 중소사업자 대상 간편회계 서비스 '캐시노트'를 카카오톡에 제공하면서 올 10월에 카카오에서 40억원의 투자를 받는 등 지금까지 51억원을 모았다. 에이젠글로벌도 1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입주 기업의 사업을 은행 서비스와 연계하는 협업 기회 제공도 위비핀테크랩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는 금융사가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가 핀테크 스타트업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은 '문턱 높은' 금융사와 사업을 논의할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은데 금융사가 지원하는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하면 은행과 기술 제휴에 대해 협의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

우리은행이 위비핀테크랩에 입주한 스타트업의 기술을 바탕으로 도입한 사업은 현재까지 5건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매너카와 제휴해 모바일 자동차대출 상품 '위비오토론'을 출시하면서 트라이월드홀딩스의 '차량 보증 서비스 앱' 기술도 접목했다.

광고기획자 출신이 창업한 비네핏은 고객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해 고객별로 적합한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카드와 손잡고 소비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카드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 다움소프트는 해외직구 앱 '사라다' 서비스를 위비마켓의 해외직구 서비스에 접목했으며 에이젠글로벌은 연내 AI 연계 여신상품 솔루션을 개발해 우리은행에 납품할 계획이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나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보수적인 금융사를 설득하기가 어려운데 우리은행과 제휴를 통한 상용화 경험은 향후 금융 서비스를 확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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