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우주센터 견학후기] 다시 쓰는 별자리의 전설

머니투데이 김백상 작가  | 2017.12.13 08:00

<기행문③>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에셔의 손’ 김백상 작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인체의 구조상 고개를 뒤로 젖히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자세인 걸 뭐.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차분히, 반짝이는 별빛을 올려다보시기를 권한다.

물론 입을 꼭 다문 채. 아마 계속 입을 닫고 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치과 의사가 ‘아, 하세요.’라고 하거나 눈에 안약을 넣을 때 입이 벌어지는 현상과는 다르다. 뭐랄까, 별들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허영심 때문에 거꾸로 매달린 의자에서 형벌을 받고 있다는 카시오페이아나 아폴론의 계략으로 연인 아르테미스의 활에 맞아 숨을 거둔 사냥꾼 오리온의 비극, 메두사의 피와 바다의 물거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천마 페가수스의 전설도 결국 별을 올려다보던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별들은 우리 안에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노련한 상담사라고, 나는 믿는다.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이었다. 전라남도 고흥군 남쪽 끝에 위치한 와교 마을에서 나로우주센터 탐방단 19명은 일제히 하늘을 우러렀다.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마다 입을 벌린 채 우리는 별들과 담소를 나눴다.

맑고 차가운 바람이 대기를 정화해 지상과 우주의 통신을 용이하게 했다. 무수한 별들 중 내게 말을 건 별자리는 천마 페가수스의 몸통을 이루는 커다란 사각형이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속 시원히 털어놔 보라고." 포장마차에 마주앉은 '절친'처럼 별빛은 조곤조곤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고 보니 페가수스자리의 사각형은 말의 몸통이라기보다 낮에 방문했던 나로우주센터 추진기관시험동의 네모난 건물과 판박이였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자와 심사위원, 일반 참가자와 기자 그리고 출판사 직원으로 구성된 나로우주센터 탐방단이 용산역에 모인 건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머니투데이 문화부 김고금평 기자의 인도하에 탐방단은 KTX에 올라 순천으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창밖은 온통 하얬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심사위원장 박상준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에 취해 우리는 한동안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츰 눈이 사라지고 두 시간 반 후 열차가 순천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나서자 순할 ‘순’, 하늘 ‘천’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봄볕처럼 포근한 순천의 햇살이 우리를 맞았다.

여행의 묘미는 식도락이라 했던가. 탐방단은 곧바로 남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길게 뻗은 방에 둘러앉아 한 명씩 자기소개를 마쳤을 즈음, 종업원 둘이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들고 들어왔다. 단박에 시선을 끈 음식은 붉은 빛이 도는 주꾸미 구이와 돼지고기 볶음이었다. 노릇하게 익은 통통한 양태찜도 군침을 돌게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방풍나물을 먼저 맛보라고 권했다. 역시 전문가의 조언! 새콤달콤한 양념에 어우러진 신선한 나물 향이 금세 입맛을 돋우었다.

흰 쌀밥에 비빈 토하젓과 갈치속젓의 감칠맛도 일품이었다. 오랜 기간 굴을 삭혀 만들었다는 진석화젓의 풍미는 그윽한 바다의 향을 연상시켰고, 말린 꽁치를 닮은 대갱이 무침 역시 자석처럼 자꾸 젓가락을 끌어당겼다. 찬의 수가 워낙 많아 다른 접시 밑에 숨은 더덕구이나 알토란을 찾아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진수성찬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탐방단은 버스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한 시간 반을 달렸다. 가물가물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로1대교와 2대교를 건너 드디어 버스가 외나로도에 들어섰다. 섬 동쪽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도로의 끝에 나로우주센터 과학관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방문이 가능하지만 다음부터는 통제 구역이었다. 탐방단을 마중 나온 과학관운영팀의 최정규 연구원이 보안서약서를 돌렸다. 서약서에 서명하려니 새삼 엄중한 기분이 들었다.

탐방단이 처음 방문한 곳은 발사통제동이었다. 발사통제동 내부에 설치된 지휘센터는 발사체의 연료, 온도, 속도, 위도, 경도, 기상 상태 등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커다란 스크린이 전면을 덮고 있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접한 나사(NASA)의 지휘센터에 비하면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 나로호(KLSV-1)의 발사를 성공시켰다.

현재 추진 중인 한국형발사체(KLSV-2) 개발 사업은 순수 우리 기술로 1.5톤급 실용위성을 600~800km의 저궤도에 투입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형발사체의 크기는 직경 3.5m에 길이 47.2m로 아파트 15층 높이에 달한다. 추진제를 포함한 무게는 약 200톤. 3단형의 발사체로 1단은 75톤급 엔진 4개를 묶어 300톤의 추력을 낸다. 추력의 크기를 좀 더 체감하기 쉽게 표현하면 1.5톤 중형차 200대를 한꺼번에 우주로 밀어 올리는 힘에 해당한다. 속도는 대략 24,840km/h로 일반 여객기에 비해 27배가량 빠르다고 한다. 그렇게 엄청난 추력과 속도를 내기 위해 드럼통 272개 분량(약 54,400kg)의 등유를 소비한다.

연구원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배명훈 작가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졌다. ‘연구소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 7km밖에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거죠. 망망한 바다가 지겨워 때로는 창문의 커튼을 걷지 않기도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이나마 연구원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해의 끝 외딴 섬에서 그들은 중력과 고독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발사통제동을 나와 우리는 추진기관시험동으로 향했다. 시험동 앞에는 기다란 헬륨 가스통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헬륨은 추진제 탱크와 터보 펌프의 압력을 높여줄 때 사용하고 밸브를 여닫을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추진기관시험동에 들어서자 희미하게 석유 냄새가 났다. 각종 설비와 도구가 놓인 통로를 지나자 75톤급 엔진이 위용을 드러냈다. 엔진의 추력을 견딜 수 있도록 두꺼운 강철 빔들이 공학적인 구조를 이루며 건물 천장과 연결돼 있었다.

엔진 개발에서 맞닥뜨리는 대표적인 문제는 연소불안정이다. 이는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동이나 추진제 공급 계통의 교란이 연소실 내의 압력, 온도, 유속 등에 영향을 미쳐 불안정한 연소 상태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자칫 엔진이 폭발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지만 1930년대 엔진 개발이 시작된 이래 아직 명확한 원인이나 해결 방법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기술로는 연소안정화 장치 같은 구조물을 추가하거나 엔진의 구조를 변경하는 수밖에 없다. KLSV-2의 엔진도 연소불안정 현상이 나타났으나 1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해결해 냈다.


이제 2018년 시험 발사까지 남은 문제는 4개의 엔진을 하나로 묶어 균형을 맞추는 클러스터링이다. 엔진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가느다란 기계음이 들렸다. 수많은 관들이 핏줄처럼 곳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연구원들에게 엔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진이 내뿜은 화염의 온도는 3,000℃에 달한다. 대부분의 물질을 녹이는 온도다. 발사대와 시험동 하부의 구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화염이 나오는 아래쪽으로 초당 900L의 물이 공급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영상으로 본 발사체의 밑동에서 치솟는 하얀 가스는 연기가 아니라 수증기다. 수증기가 원활히 배출될 수 있도록 수로 모양의 커다란 콘크리트 배출구가 건물 바깥으로 이어졌다. 엔진의 열기가 남긴 시커먼 그을음이 배출구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발사대는 방문하지 못했다. 높이 솟은 세 개의 피뢰침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탐방을 마치고 버스가 외나로도를 빠져나오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예약한 식당에서 푸짐하게 회를 즐긴 탐방단은 와교 앞바다가 보이는 펜션에 짐을 풀었다.

펜션 1층 큰 방에 다시 모인 탐방단은 돌아가며 우주센터를 방문한 소감을 밝혔다. KLSV-2 이후의 구체적인 발사체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 계획은 일단 성공하면 그때 가서 다음 계획을 수립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의 연속성이 끊겨 민간 자본이 투자를 꺼린다.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는 예비타당성조사도 발목을 잡는 족쇄 중 하나다.

우주 개발은 수십 년 후를 바라봐야 하는 사업이다. NASA나 JAXA, ESA처럼 정책을 수립·관리하고 연구 개발을 추진하는 통합 기구의 설립도 절실하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국내 R&D 분위기, 실패했을 때 책임 추궁에 매달리는 언론과 여론도 문제로 거론되었다.

인류가 우주로 뛰어드는 건 필연이다. 머지않아 인류는 달을 개척하고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사명감으로 항우연(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은 불철주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은 우주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아닐까. 나는 문득 발사체의 열기가 빠져 나가는 콘크리트 배출구를 떠올렸다. 엄청난 열기와 검댕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 흙더미에 이름 모를 풀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잡초로 무성하지만 조만간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할 거라는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니까 내가 나로우주센터의 추진기관시험동과 닮았다는 말이지?" 페가수스자리의 커다란 사각형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응, 맞아. 앞으로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추진기관시험동이 떠오를 거야. 그래서 말인데, 너를 페가수스가 아니라 추진기관시험동이라고 불러도 될까? 줄여서 추시동."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이지!" 페가수스자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저쪽에 있는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보라고. 발사체의 엔진 노즐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 같지 않아?" 그가 덧붙였다.

역시 별들은 관대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누군가 옆에서 탄성을 질렀다. 별똥별을 본 듯했다. 평소라면 부러웠겠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나는 새로운 별자리의 전설을 품은 채 숙소로 종종걸음쳤다.

다음날 돌아오는 열차에서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아무래도 우주 개발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실패에도 실망하지 않는 믿음이 아닐까. 바쁜 일상에 치여 언제 우주센터를 방문하겠느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홈페이지를 통해 언제든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까. 특히 블로그에 재미있는 자료들이 잔뜩 쌓여 있다. 그리고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라. 틀림없이 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네모난 별자리를 발견한다면 부디 남해의 외딴 섬에서 중력과 정면 대결을 펼치고 있는 항우연 연구원들을 떠올려 주시기를 바란다. 언젠가 우리와 우리의 후손은 그들이 개발한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누빌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나로우주센터 추진기관시험동에서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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