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외면으로 대학 총학생회가 없어지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학생운동의 구심점으로 사회적 위상이 컸지만 2000년대 들어 소위 '운동권 학생회'가 급속히 사라진 데 이어 이제는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총학 자체를 세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는 지난달 21~24일 총학 선거를 진행했다. 올해 56년 만에 총학 없이 비대위 체제를 꾸렸던 연세대가 투표율 50%를 달성하면서 총학 재탄생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1, 2위 선거본부의 표 차이가 오차 범위 내로 집계되고 2위 선본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재투표가 진행 중이다. 1위 선본의 찬반을 묻는 재투표 기간은 당초 4~6일이었으나 투표율이 저조해 11일까지 연장됐다. 투표율이 유권자 3분의 1을 넘지 않으면 연세대는 2년 연속 총학 없는 대학으로 남는다.
과거 학생회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던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본지가 1980~199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역대 의장을 배출한 대학 11곳(고려대, 명지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영남대, 전남대, 조선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대학이 현재 총학 구성에 실패하거나 애로를 겪었다.
한국외대는 2년 연속 입후보자가 없어 지난달 총학 선거가 무산됐다. 한양대도 선거 기간을 연장했지만 투표율(36.5%)이 개표 성립요건인 과반수를 달성하지 못했다.
홍익대는 지난달 투표율 48%(성립요건 40% 이상)로, 명지대도 지난달 투표율이 37.6%(별도 개표 기준 없음)로 낮았지만 총학을 뽑았다.
비교적 수월하게 과반 투표율을 보인 곳은 지난달 선거에서 60.3%를 기록한 영남대가 유일했다. 부산대는 지난달 선거를 2시간 연장한 끝에 과반 투표율 50.4%를 달성했다. 조선대도 지난달 하루 더 선거를 연장해 과반 투표율을 얻었다. 4월 선거를 치른 전남대도 투표율 51.8%로 소폭 과반을 넘겼다. 서울대도 지난달 투표율 52.7%로 과반을 넘겼다.
이밖에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서강대는 지난달 투표율이 21.7%에 그쳐 이달 선거를 연장해 겨우 총학을 구성했다. 서울시립대도 선거를 연장했으나 투표율 37.7%로 개표 문턱(40%)을 넘지 못했다. 가톨릭대는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았다. 경희대는 투표율이 과반을 넘겼으나 찬성 정족수가 미달됐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우선 극심한 취업난이 꼽힌다. 총학 선거에 불참한 강승형씨(25·연세대)는 "학생회가 학교와 학생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면서도 "취업준비 등 인생 설계에 힘 쓰다 보니 여유가 없어 총학 선거에 관심이 안 간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이전 방식의 학생운동이 자취를 감춘 후 총학이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회가 과거에는 사회 문제에 정의감을 표출하는 등 대표성이 명확했지만 지금은 역할이 부재한 상태"라며 "자체 비리 등의 문제로 학생 의사를 대변한다는 최소한의 기능마저 의심받는 경우가 많아진 탓에 총학을 뽑을 이유가 적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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