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우리가 알지 못하는 삼성-네번째 이야기: 합병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 2017.12.06 05:30

편집자주 |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편집자주]

이 이야기는 2012년 2월 6일에서 2015년 1월경까지 벌어진 이야기다.

최근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시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이나 상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최종 의사결정자는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5년 전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기자는 2012년 2월 6일 저녁 5시 30분경(퇴근 무렵) 삼성 서초 사옥 로비에서 이재용 부회장(당시 사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을 그 자리에서 만난 경위는 복잡해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있었던 얘기를 중심으로 설명할까 한다. 그 자리에서 이 부회장과 나눴던 얘기는 당시 이슈가 되고 있었던 장외시장에서의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가능성과 그 시기에 대한 것이었다. ☞관련기사 [단독]이재용 사장 "삼성SDS·에버랜드 상장계획 없다"

그 당시 이 부회장은 자신이 주요 주주로 있는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루머가 장외시장에 퍼지고 주가가 급등락해 소액주주들이 혹 상장을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잃을 것에 대한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기자에게 조만간 상장할 것이라는 얘기들은 루머이며, 상당히 오랜 기간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상당기간'이 언제까지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구체적으로 시기를 특정했었다.(기사에는 '어느 시점 이 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라고 표현돼 있다.)

이 부회장은 당시에 오랜 기간 상장계획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상장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었다. 당시 시중에 돌았던 경영권 안정화를 위해서나, 상속 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이 회장의 건강을 묻는 질문에는 "건강하신데 의사들의 말을 잘 안들으신다"며, "당뇨가 있는데 식사조절을 안하셔서 걱정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건강했던 이 회장의 '유고'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순화해서 보도했었지만, 삼성SDS나 에버랜드를 통해 차익을 얻는다는 사회적 여론에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직후 기자는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장이었던 김순택 부회장과 저녁을 할 기회가 있어서 재차 "왜 에버랜드를 상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김 실장은 당시 "이 회장께서 에버랜드 상장을 꺼리시는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상장과 관련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2년 좀 더 지난 시점에 바뀌었다. 상당 기간 상장하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발언을 보도했던 기자 입장에선 2년여 만에 상장으로 바뀐 기조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3월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이 발표됐고, 5월 8일 삼성SDS의 연내 상장 계획이 공식 발표됐다. 그리고 이틀뒤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리고도 6월 3일 에버랜드의 이듬해 1분기 상장 계획이 발표됐다.

이 회장이 쓰러진 현장에서 밤을 새웠던 기자는 긴박한 상황이 지난 후 김순택 실장에 이어 새 미래전략실장이 된 최지성 부회장과 2015년 초에 만난 적이 있다. 최 실장에게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삼성의 사업재편과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계열사간 합종연횡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회장 부재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빠르게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SDS 상장, 에버랜드 상장,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의 합병 발표, 화학 계열사 매각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느냐?"(기자)


"이 회장께서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었는지, 쓰러지기 한달쯤 전인 4월 중순에 사업조정 등을 서둘러서 결정해서 당시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보니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최지성 실장)

당시 최 실장에게 에버랜드와 SDS 상장 문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에버랜드와 SDS를 상장하지 않는다고 2년 전에 이재용 부회장이 기자에게 얘기했었는데, 2년 만에 상장하는 이유가 뭐냐?"(기자)

"사업환경이 변했다. SDS의 SI(시스템통합)는 중기적합업종에 묶여 국내 사업을 못하게 됐다. 또 에버랜드도 미래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를 회장께 설명해 재가를 받았다"(최 실장)

최 실장은 에버랜드의 상장에 대해서는 이 회장에게 2차례 컨펌(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2014년 1월 초 이 회장이 일본에 있을 때 최 실장은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사장), 김종중 전략1팀장(사장) 등과 함께 사업재편과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한 중장기 플랜을 들고 일본으로 가서 사업환경을 설명하고, 첫번째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 실장의 마음에 걸렸던 게 있었다. 전임 김순택 실장 시절에 들었던 "회장께서 에버랜드 상장을 꺼린다"는 내용이었다.

최 실장은 "그 후 회장께서 4월에 귀국했을 때 다시 한번 '에버랜드와 SDS를 상장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자 이 회장이 '지난 번(1월)에 하라고 했잖아'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시 최 실장이 "회장께서 상장을 꺼리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자 이 회장은 "누가 그래? 계획대로 진행해!"라며 짜증을 내듯이 재가를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의사결정을 거쳐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최 실장은 "이 결정은 이 부회장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회장이 두번씩이나 승인해 결정한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팔고 합치는 등의 큰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라며 "회장께서 어느 순간 깨어나서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라고 하면 그걸 견딜 수 있는 월급쟁이는 없을 것인데, 달리 말하면 회장의 재가가 있어서 빨리 할 수 있었다"고 당시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자신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무리하게 합병을 이끌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지난해 일부 언론들의 보도가 나왔을 그 같은 보도를 의아하게 생각했던 이유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을 아는 입장에서 삼성의 사업재편이 부정청탁과 관련됐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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