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 2017.11.29 05:00
포항 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된 다음 날 아침 한 학원 옥상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북하게 쌓인 책들 사이로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내년에 다시 수능을 치를 수 없다는 결기를 다지며 버렸던 수험서와 문제집을 뒤졌다. 한참을 뒤지고도 찾지 못했거나 절박한 마음에 쓰레기통까지 뒤진 수험생들도 있었다. 그 어떤 수험생이 수능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지겨웠으면 책을 저렇게까지…’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어쨌든 수능은 아무 탈 없이 마무리됐다.

며칠 뒤 서초동에서도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군 사이버 사령부의 댓글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진 전 국방부 실장이 법원의 구속 적부심 끝에 잇따라 석방됐다. 석방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구속적부심으로 이런 거물급 피의자가 석방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불구속 수사 원칙, 피의자 방어권 보장 등 법원도 할 말이 있겠지만, 구속영장을 발부해 놓고 11일 만에 구속적부심으로 풀어주는 것은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수험생들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2차례 석방 소식에 검찰은 공개 반발했고, 나중에는 기가 막혀 하는 듯했다. 김 전 장관을 넘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최종 목표로 순항하던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나아가 연내 ‘적폐청산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도 틀어지게 생겼다 .

범죄가 있으면 수사하는 게 검찰의 본령이라지만, 그간 일각에선 전방위적 사정수사 배경엔 개혁을 앞둔 검찰의 위기감이 있다고 봤다. 개혁 대상 1호였던 검찰이 어느새 적폐 청산을 주도한다. 이 전 대통령이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관련 사건에서 성과를 올리면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등 자신들을 향한 개혁의 칼을 견제할 수 있다는 심리도 있어 보인다. 과거 참여정부 때 대선 자금 수사를 통해 검찰 개혁을 저지한 경험도 있다. 여의도를 향한 검찰의 칼끝이 매서울수록 정치권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과거 검찰 개혁이 여의도를 향한 검찰의 칼끝 때문에 무력화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색안경을 끼고 삐딱하게 볼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군이 기밀 조직을 통해 대선에 개입한 중대한 범죄다. 음습한 정보 공작정치와 군의 정치 개입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국기 문란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란 정치권의 프레임을 넘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의 노력은 그것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비록 암초를 만났지만, 이번 일로 검찰의 수사가 좌초돼선 안 된다. 오히려 증거를 보강하고 법리를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기 문란 중대범죄를 법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란 수사팀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적법하고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

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는 ‘기록은 깨질 때까지만 존재한다’ 등 요기이즘(Yogism)이라 불리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1973년 그가 감독을 맡고 있던 뉴욕메츠는 7월까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꼴찌를 하고 있었다. 선두와는 9.5게임 차. 당시 기자가 “뉴욕메츠는 올 시즌 사실상 끝난 것 아니냐”고 묻자 요기 베라는 기자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그해 뉴욕메츠는 기적적으로 동부지구 1위를 차지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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