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프로파일러', 유영철 면담 후 스트레스로…

머니투데이 이보라 기자 | 2017.11.29 05:36

[인터뷰]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 "흉악범죄 예방, 사회 고립 막아야"

권일용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교수./사진=홍봉진 기자
"2004년 유영철과 면담하고 나온 뒤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그만둬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하는 끔찍한 이야기를 평생 나 혼자 듣고 살아야 하냐는 심정이었어요. 당시 프로파일러가 저밖에 없어서 공감해줄 상대도 없었죠."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다. 프로파일러는 일반 수사로 파악이 어려운 연쇄살인 등 중요 사건 용의자의 행동 유형·심리 등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는다. 유영철과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을 대면하는 건 그의 몫이었다. 스트레스로 이가 세 개나 빠졌다.

권 교수가 경찰의 길에 들어선 건 1989년 순경 공채였다. 1993년 서울 광진경찰서(당시 동부경찰서)에서 과학수사를 맡기 시작했다. 2000년 선배 추천으로 프로파일러에 지원했다. 2000대 1 경쟁률을 뚫었다. 1996년 지문으로 범인을 가장 많이 잡아 경장으로 특진한 게 한몫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으로 옮겼다.

당시 프로파일러는 그가 처음이자 혼자였다. 2005년 프로파일러 특별채용이 실시되면서 동료가 생겼다. 흉악범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악인의 정신세계를 직·간접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본인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 그래서 수사를 끝내면 항상 후배이자 동료와 마무리 모임을 가졌다.

"사건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어요. 두세 시간 정도 잡담하며 가볍게 술을 먹는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나 혼자 겪는 게 아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느낄 수 있어요."

동국대 교정에서 만난 권 교수는 나이를 묻자 말을 아꼈다. 그간 범죄자에게 신상이 노출돼 해코지당하는 경험이 수차례 있었다는 이유다. 2006년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을 수사할 때 정남규 집에서 자신의 사진과 신상이 담긴 기사를 직접 발견한 일도 있었다.


프로파일러 시절 매달 수십 건의 흉악 범죄를 살폈다. 매일 몇 구의 시신을 마주 했고 피범벅인 범죄 현장에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범행 증거물을 보고 또 봤다.

끊이지 않는 흉악 범죄 공통점으로 권 교수는 '고립'을 들었다. 흉악 범죄자는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자의로 이탈하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주변인이 고립된 개인의 사회화를 돕고 사회적 연대와 협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00명이 넘는 악질 범죄자와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특정해서 꼽을 수는 없다. 권 교수는 "부검은 표정없는 시신을 대하니까 수천 건을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표정과 생각이 담긴 사람을 대하니 전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에 프로파일러는 20여명 정도다. 소수이기 때문에 특별해 보이기도 하지만 권 교수는 미화를 경계했다. 권 교수는 "프로파일러는 모든 해결책을 쥐고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며 "용의자의 행동과 심리, 범죄 유형을 분석하고 수사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경찰 생활 28년, 과학수사 24년 끝에 올해 4월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경정)에서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강단에 섰다. 당분간 강단에서 현장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며 후배를 양성할 계획이다. 권 교수는 "오랜 시간 범죄자 입장으로 살아왔다"며 "이제는 후배에게 경험을 전달하면서 프로파일러가 아닌 '나'의 삶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번개탄 검색"…'선우은숙과 이혼' 유영재, 정신병원 긴급 입원
  2. 2 유영재 정신병원 입원에 선우은숙 '황당'…"법적 절차 그대로 진행"
  3. 3 법원장을 변호사로…조형기, 사체유기에도 '집행유예 감형' 비결
  4. 4 "통장 사진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첫출근 전에 잘린 직원…왜?
  5. 5 '개저씨' 취급 방시혁 덕에... 민희진 최소 700억 돈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