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홍의포와 한국원전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 2017.11.27 03:20
1637년 1월 30일 삼전나루. 평민이 입는 쪽빛 두루마기를 걸치고 맨발로 20리(7.9㎞)를 걸어온 인조는 9단으로 쌓은 수항단에 앉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우리 역사 최악의 치욕으로 꼽히는 ‘삼전도의 굴욕’이다.

당시 조선은 한반도를 침략한 청에 불과 47일 만에 무릎을 꿇었다. 역사학자들은 무능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들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꼭 봐야 할 또 다른 본질이 있다. 바로 ‘기술’이다.

근세시대(1500~1800년)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의 명운을 가른 기술은 화약 등 무기기술이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불패신화를 썼지만 허베이성 동북부의 영원성(寧遠城)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명군이 가진 ‘홍이포’(네덜란드 화포기술로 만든 대포)의 뛰어난 위력 때문이었다. 명군은 2만의 군사로 청군 13만을 격퇴했다.

역설적으로 청이 명을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한 원동력도 홍이포다. 영원성의 명군은 조정에서 자신들을 홀대하자 홍이포를 가지고 청에 귀화했다. 청은 홍이포를 복제해 ‘홍의포’로 이름을 바꾸고 주력무기로 사용했다.

조선이 47일 만에 패한 이면에도 홍의포가 있다. 인조와 중신들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면서 강화도를 거점으로 반격을 꾀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이던 강화도는 홍의포를 쏘며 도하한 청군에 하룻밤 만에 함락됐다. 강화도 함락이 전해지자 인조는 항복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기술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고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의 화두는 ‘에너지’다. 4차 산업혁명도 에너지기술의 뒷받침이 없다면 허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에너지 극빈국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에너지기술에 투자해 해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형 신형원전(APR1400)이다. 기술자립에 성공한 이 원전은 원자력연료 1㎏으로 석유 9000드럼, 석탄 3000톤을 대체한다. 안전성 측면에도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형 신형원전은 핵융합·수소경제 등 차세대 에너지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든든한 브리지에너지로 손색이 없다. 해외에서 한국 원전에 ‘러브콜’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계적 추세’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붙여 이 기술을 버리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새다. ‘뜰에 꿩이 맛있어 보인다고 마당의 닭을 버린다(가계야치·家鷄野雉)’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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