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본으로 돌아선 현대중공업그룹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 2017.11.23 15:15
"연구개발(R&D) 투자를 매출 대비 3% 이상으로 올릴 겁니다"

9월께 만난 주영걸 현대일렉트릭 사장은 이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대로 믿진 않았다. 유상증자 성공을 위한 '프로파간다'라 여겼다. 수십년간 R&D 비중이 2%를 넘지 못했는데 무슨 투자를 갑자기 늘리냐는 게 기자의 의구심의 근원이었다..

이 그룹이 그동안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도 의심했다. 사업 분할의 실제 목적이 오너 지배력 강화일 거라 기자로서 비판적 관점을 유지했다.

두 달이 지났다. 현대일렉트릭을 들여다보니 3분기까지 R&D 비중이 2.5%였다. 분할 전 중전기 사업부에 불과하던 이 계열사가 40년간 넘지 못했던 2% 벽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3% 비중은 허언이 아닌 것이다.

주 사장이 했던 다른 말도 떠오른다. "2021년 R&D 비중은 5% 이상입니다"

전기·배전 기기업계의 글로벌 상위사인 지멘스와 ABB가 매출 대비 5%대 R&D 비용을 퍼붓는다. 이들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렇게 투자하면 기존 영역에 ICT를 덧입혀 에너지 솔루션 업체로 도약하려는 목표가 현실성을 갖는다. 현대중공업이 무거운 제조기업에서 소프트웨어 리더로 전환할 기회다.


현대중공업의 시행착오는 길고 길었다. 한때 이 그룹은 조선 호황으로 달러박스가 넘치자 수조원을 들여 증권사를 샀고, 사할린 땅을 차지해 목장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룹의 주요 보직은 오너 친구들과 재무 출신들이 꿰찼었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임직원을 내보내게 한 불황은 이 무겁고 관성적이던 집단을 각성하게 한 것 같다. 그룹은 지난 1년간 호텔과 삼호중공업 지분, 증권사를 처분했고 이제 기술과 품질로 돌아가자고 역설하고 있다.

그룹은 22일 현대로보틱스 등 주력 3개사의 부사장급 임원을 모두 R&D 전문 인물로 채웠다. 유례없는 엔지니어 중심의 인사 발령이다. 이들이 마침내 찾아낸 지향점을 공감할 수 있다.

그룹은 2021년까지 계열사 R&D에 총 3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관련 인력을 1만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중후장대한 기업이 그들의 각성과 변신을 웅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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