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유학의 외로움이 애상의 정서 이끌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7.11.25 06:47

[인터뷰] 올해 데뷔 45주년 맞은 가수 정미조…“끝없는 연습과 연습으로 이어진 곡과 나의 물아일체 경험”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수 정미조. /사진=임성균 기자
그는 3박자에서 덤덤하고, 4박자에서 구슬프다. 왈츠 리듬(3박자)이 지닌 우울한 정서를 꿰뚫어서인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수 어린 소리를 배제한 듯했고, 느리고 건조한 4박자에선 깊고 짙은 애상을 이입한다.

지난해 프랑스 유학을 떠난 지 37년 만의 음반 ‘37’ 이후 1년 반 만에 내놓은 음반 ‘젊은 날의 영혼’의 주인공인 정미조(68)는 마치 “어떤 장르라도 모두 소화해주겠다”는 듯 작정하고 노래했다.

새 음반 작업이 장르나 박자를 이해하고 부른 ‘계산적 행동’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원칙도 규칙도 없었다”고 했다. 장르의 이해는 물론, 작곡가의 의도도 괘념치 않았다. 비결은 오로지 하나.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을 뿐이다.

“녹음하기 전, 몇 달 동안 죽으라고 연습만 했어요. 곡을 틀고 노래하고, 다시 듣고 연습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로지 그 노래가 원하는 얘기가 무엇이지 들려요. 만약 이 곡들을 하루 이틀 만에 녹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기 창법이 투영되겠지만, 전 노래 하나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그런 것조차 사라졌어요. 원래 가진 멜로디와 가사가 저와 ‘짝’하고 달라붙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면 무의식 속에서 답이 나오거든요.”

감동의 음악이란 그런 것일까. 어떤 한 마디가 청자의 뇌리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진득거림의 정체가 그런 배경 때문이었을까. 자신과 곡이 한몸이 되는 물아일체의 경험, 초로(初老)의 뮤지션이 이 얘기를 전할 땐 어떤 선각자의 메시지보다 더 강렬했다.

지난해 낸 음반과 달리, 1년 반 만에 내놓은 새 음반은 정미조가 오로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내놓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연습의 끝에 멜로디와 가사가 '나'와 맞는 순간이 생긴다"며 "장르를 몰라도 반복하면 무의식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작년 음반은 성대가 지치고 연습할 시간도 없어 데뷔 때처럼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했어요. 이번에는 온종일 지겨울 정도로 연습한 결과물이라고 봐야 해요.”

재즈 뮤지션들이 주로 곡을 만들고 연주에 참여해서인지 음반은 단조 선율에도 세련미가 풀풀 넘친다. 리듬이 뒤로 갔다 앞으로 와도 정미조의 가창은 흔들리지 않고 음을 지배하기 일쑤다.

‘문득 이별’에선 노래하지 않고 이야기를 던지고, 녹음 내내 눈물만 흘렸다는 ‘젊은 날의 영혼’은 반주가 되레 방해될 정도다. 생애 처음 작곡에 도전한 ‘난 가야지’, ‘오해였어’ 등 3곡은 조미료 없는 ‘그’의 본질을 읽듯 친근하고 따뜻하다.

곡을 여러 번 듣다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김포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던 부유한 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자란 그가 이렇게 슬픈 단조 선율을 어떻게 가슴 깊이 해석할 수 있었을까. 정미조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첫째는 어릴 때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이유는 말하기 어렵고요. 제겐 아주 큰 슬픔이자 불행이었죠.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인지 늘 마음속에 어떤 애정 결핍 같은 게 많았어요. 1972년부터 7년간 화려한 가요 생활을 끝내고 화가의 꿈을 안고 달려간 프랑스에서 보낸 13년의 세월에서도 극심한 우울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때마다 잊고 있었던 음악을 몰래 꺼냈죠. 이브 몽탕의 ‘고엽’은 외로울 때마다 부른 곡이었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정미조는 어릴 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남몰래 애정 결핍을 오래 겪었다고 털어놨다. 13년간 이어진 프랑스 유학 생활에서도 극심한 우울로 유복하고 화려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슬픈 정서'에 친숙하다고 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올해 가수 데뷔 45주년. 당시엔 패티 김 못지않은 세련된 외모와 뛰어난 가창으로 지금의 아이유만큼 이름을 날렸다. 어릴 때부터 재능도 넘쳐 중학교 때까지 무용으로 각종 상을 휩쓸기도 했고, 외가 핏줄을 이어받아 그림과 음악에도 빼어난 실력을 과시했다. 한번 시작하면 집중을 멈추지 못하는 기질도 ‘재능 마스터’에 한몫했다.

“무용이나 음악, 미술 모두 결국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자기의 깨달음이죠. 이론적인 것은 아는 것일 뿐, 자신이 느끼지 않고선 어떤 것도 표현할 수 없거든요.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던 고갱이 40세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화가가 되지 않았나요? 고흐 이전에 고흐만큼 빨리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나요?”

정미조는 이번 음반 작업을 하면서 노래 연습하는 내내 행복했다고 했다. 자신이 노래들의 선생님이자, 학생이었고 도전자이면서 창조자였기 때문. 그는 “이 음반을 만나기 위해 45년을 기다려온 것 같다”는 절절한 말도 빼놓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처음 받는 어린아이처럼 웃는 그의 표정에서 세월이라는 낱말은 잠시 스쳐 지나는 바람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정미조는 새 음반에 대해 "이 음반을 만나기 위해 45년을 기다려온 것 같다"고 했다. 오는 12월 10일 새 음반 발매 콘서트에선 '재주 소년' 오연준과 함께 세대를 뛰어넘는 하모니를 들려줄 예정이다. /사진=임성균 기자

‘눈물을 부르는 소년 가수’ 오연준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 ‘바람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시작되는 거기에는 봄이 부풀고 있겠지~’ 건조한 소년의 목소리와 미음 건네듯 따뜻한 위로를 보내는 할머니의 소리가 만나는 이 지점에서 잿빛이 진하게 드리웠다.

오는 12월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새 음반 발매 콘서트가 눈물바다가 되지 않기를 잠시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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