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요구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뇌물을 받고 돌려준 공무원이 있었다. 이 공무원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임을 물려야 할까. 뇌물을 반환한 경우 뇌물죄 성립 범위에 대한 대법원 판례(2007년 3월29일 선고, 2006도9182)가 있어 소개한다.
지방 소재 한 세무서에서 개인 재산세 업무를 담당하던 세무 공무원 A씨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던 B씨로부터 "조사결과를 모두 인정하고 확인서를 작성해 줄테니 다른 금융거래 내역에 대한 추가조사 없이 세무조사를 종결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B씨가 탈루한 세금은 8억원을 웃돌았고 추후 납부해야 할 세액도 4억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추징세액을 절반으로나마 줄이려는 의도를 가졌던 B씨는 A씨에게 "얼마의 뇌물을 주면 되겠냐"고 끈질기게 물었고 A씨는 손가락 1개를 펴 들었다. A씨는 이를 "1000만원만 달라"는 뜻이었다고 나중에 밝혔다. 그런데 B씨는 그 손가락 1개를 '1억원'으로 이해하고 현금 1억원을 담은 가방을 A씨에게 건넸다.
집에 돌아온 A씨는 생각했던 것(1000만원)의 10배나 되는 뇌물을 확인하고 놀랐다. A씨는 B씨에게 "뇌물을 돌려주겠다"고 연락을 했지만 B씨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만나주지 않는 등 이유로 곧바로 뇌물을 돌려주지 못했고 한 달 반이 지나서야 1억원이 든 가방을 그대로 반환했다.
1심에서는 A씨가 받은 뇌물이 1억원이라고 보고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때는 가장 무거운 무기징역이나 10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은 기본 형량을 10년형으로 잡은 후 A씨가 초범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재량에 의해 형량을 절반인 5년으로 정했다.
그런데 2심에서 A씨에 선고된 형량은 5분의 1인 1년형으로 확 줄었다. A씨가 실제 받으려던 뇌물의 액수는 1억원이 아니라 1000만원에 불과한데 1억원 전부에 대해 뇌물죄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형으로 줄였고 A씨의 미결구금 기간(95일)을 형기에 산입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이런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2심이 뇌물죄의 법리를 오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영득'(취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품을 수수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먼저 뇌물을 요구해 돈을 받았다면 그 금액 전부에 대한 영득의 의사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영득의 의사로 뇌물을 수령한 이상 그 액수가 피고인이 예상한 것보다 너무 많은 액수여서 후에 이를 반환했다고 해서 뇌물죄 성립에는 그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스스로 대가를 요구해 돈을 받은 이상 받은 돈 전부를 '영득의 의사'로 수령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설령 100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이를 받았다고 해서 1000만원에 대해서만 영득의 의사가 인정되고 이를 넘어서는 액수에 대해서는 영득의 의사가 부정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조항
형법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①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하여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후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 ① 「형법」 제129조·제130조 또는 제132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그 수수(收受)·요구 또는 약속한 뇌물의 가액(價額)(이하 이 조에서 "수뢰액"이라 한다)에 따라 다음 각 호와 같이 가중처벌한다.
1.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수뢰액이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3. 수뢰액이 3천만원 이상 5천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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