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피해자 목소리 듣고 기록해야죠"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 2017.11.21 14:06

김승섭 고려대 교수 "재난때 구호.대응 보고서 외에 피해자 목소리 남겨야"..'아픔의 길이 되려면' 출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사진제공=동아시아 출판

쌍용차 정리해고, 세월호 참사 등의 연구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과학대)가 “대형 재난의 수습 과정에서 대응과 구호같은 국가기관 위주의 보고서만 작성할 것이 아니라 재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기록해야 한다”고 21일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 약자들이 더 아픈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연구 저작물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펴냄)을 지난 9월 내서 반향을 일으킨 보건학자다. 그의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 사이에서 올해 출간된 도서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혐오와 차별, 고용불안, 재난 등 사회적인 상처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한 사례를 묶은 책이다.

그는 최근 포항 지진 이후의 수습과 피해 주민들에 대한 조언과 관련해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적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한국사회에서 그토록 재난을 많이 겪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것 때문인데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걸 현장에서 활용하고 정책으로 수용해내느냐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책임연구원으로 '생존학생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발생했던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말을 꺼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이 모든 참사의 아픔을 겪고도 2014년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은 기록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기록되지 않았으니 그들을 기억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없었던 것이다.


아픔을 가진 이들을 만나 다시 그 상처를 들춰내는 일은 김 교수에게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상처,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책감과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을 다시 묻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 데이터로 만드는 일이 다시 그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아픔이 길이 되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사회가 개인의 건강과 질병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는다"며 앞으로도 이에 대한 고민을 연구로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가 조명하고 싶은 다음 주제는 에이즈(AIDS)다. 실제로 지난달 '성매매에 나선 부산 에이즈녀’가 언론에 크게 실려 공포가 극대화됐지만 AIDS가 아닌 HIV(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더 이상 에이즈가 무서운 질병이 아닌데도, 한국사회의 인식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며 HIV감염자들에 대한 사회의 낙인, 그들의 인권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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