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하면 봐준다"…'한국판 플리바게닝' 도입될까?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7.11.20 05:00

[the L 리포트] "수사협조자 처벌경감 허용해야"…공정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로 과징금 85% 징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사진=뉴스1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피의자에게 가벼운 혐의를 적용하거나 구형량을 낮춰주는 것을 '플리바게닝'(유죄협상)이라고 한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선 일반화돼 있지만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 등 거악의 '몸통'을 처벌하기 위한 진술을 확보하려면 우리나라에도 플리바게닝처럼 수사협조자에 대해 처벌을 경감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검찰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수사협조자 처벌경감 허용해야"

19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인 정유라씨가 덴마크에서 귀국한지 6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론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것이 주된 이유지만, 정씨가 어머니 최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상당한 도움을 줘 이른바 '특검 도우미'로 불렸던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에 대해서도 검찰은 국정농단 피의자 중에선 이례적으로 가벼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현행법상 수사협조자에 대한 처벌 경감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소에 대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이 같은 조치가 수사당국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수사협조자에 대한 처벌 경감을 양성화해 권력형 비리 수사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정말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범죄를 기획하고 지시한 '윗선'인 반면 수사는 '몸통'이 아닌 '깃털'들에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 가담자라도 제보를 하거나 수사에 협조해봐야 처벌을 경감되지 않기 때문에 윗선의 혐의를 입증할 진술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시한 윗선의 혐의를 입증한 진술을 하는 단순 가담자에겐 관대한 처벌을 내릴 수 있게 해야 윗선을 처벌하는 수사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법무부는 2011년 내부 증언자에 대한 형벌감면 및 소추면제 허용을 골자로 한 형법·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여러 사람이 관련된 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 절차에서 그 죄에 대해 진술함으로써 범죄를 규명하고 범죄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거나 범인의 체포에 기여한 사람에 대해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사사법의 경제성·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고 형벌 감면 및 소추 면제 등이 검찰 편의에 따라 원칙없이 운용될 수 있다는 등의 반론에 부딪혀 끝내 국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공정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로 과징금 85% 징수

다른 사람의 죄를 진술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플리바게닝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의 플리바게닝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할 때 처벌을 경감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러 명이 같은 범죄의 공범으로 묶여 있는 조직범죄에선 이런 차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플리바게닝 등 수사협조자에 대한 처벌 감면 제도는 미국·영국 등 실용성을 중심하는 영미법계 국가들에 주로 도입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들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맞는 죄목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이 중시됨에 따라 이 같은 제도의 도입에 유보적인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범죄가 날로 고도화·지능화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가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일본도 지난해 형법 개정을 통해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와 비슷한 '리니언시'(자진신고자 제재감면) 제도 도입으로 카르텔(담합) 적발 등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유의동 바른정당 의원이 공정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가 징수한 전체 과징금 8819억원 가운데 무려 85%에 이르는 7492억원이 리니언시를 통해 적발·징수한 것이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현행 형법 시스템에선 단순 가담자도 윗선과 함께 공범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내부 증언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검찰권 남용 등 부작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한다는 전제에서 처벌 감면을 통해 내부 증언자들이 원활하게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법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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