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트럼프 재발견, 다시 보는 트럼프현상

머니투데이 세종=양영권 기자 | 2017.11.21 06:00

[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트럼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마친 후 여야의원들의 박수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화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1년간의 미국 연수 생활이 거의 끝나 가던 때였다. 우리 가족의 발이 돼 주던 미니 밴을 존(John) 이라는 57살 백인에게 팔았다. 존은 내가 머문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 30분 떨어진 소도시 버링턴에 살았다. 그에게는 20년 넘게 탄 픽업이 따로 있었다. 아내의 1999년식 차를 교체해주기 위해 내 2007년식 미니 밴을 구입하는 거였다.

차를 넘기면서 존과 얘기를 나눴다. 화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까지 이르렀다. 존은 다수의 캐롤라이나 사람(노스캐롤라이나는 지지 정당이 자주 바뀌는 '스윙 스테이트'이지만 이번 때선 땐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이 그렇듯 트럼프 지지자였다.

트럼프의 기행이나 막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금이었다. 그는 건축 자재를 납품하며 세 자녀를 키웠다. 지금도 아침 일찍부터 낡은 픽업으로 건축자재를 나르며 힘들게 가족을 부양한다.

그는 자신이 낸 세금이 일할 능력이 있어도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오바마 케어'에 대해서도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존은 트럼프라는 인간을 보고 투표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불합리한 것들을 되돌리기 위해 '민주당 후보의 상대 후보'에 투표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일 거라는 선입견이 없지 않았다. 특히 히스패닉을 극도로 싫어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존은 나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줬는데 사진 속 다정한 모습의 둘째 사위는 히스패닉이었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가족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으로 우리 국민도 트럼프를 다시 보게 됐다. 여론조사에선 방한 전후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가 9%에서 25%로 급상승했다. 그렇다면 그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다시 살펴볼 때가 됐다. 단순히 러시아나 FBI의 '작업' 때문도 아니고, 미국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줄어들어서도 아니다.


트럼프의 주된 지지 기반은 부유층이 아니라 존 같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다. 증세에 대한 이들 계층의 불만이 '트럼프 현상'을 만든 것이다.

복지는 사회 안전망이다. 복지를 위한 세금은, 사회 단면의 불평등을 보정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소득이 충분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내는 보험료의 성격도 있어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 주기를 놓고 보면 평균적인 사람들이 낸 세금과 받는 혜택이 거의 같게 설계돼야 한다.

결국은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저항은 클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공리를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정책은 모든 국민이 박애주의자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펴서는 안된다. 고소득자나 자산가만 증세를 싫어할 것 같지만 사실은 한계선 바로 위에 있는 이들이 극도로 민감하다는 것을 트럼프 현상이 보여준다.

기자가 최근 작성한,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제도 부정 수급자 조사에 나섰다는 기사에는 댓글이 1000 개 넘게 달렸다. 많은 댓글이 주변의 부정 수급 사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여론이 나중에 한국의 '트럼프 현상'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박탈감을 갖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문재인 정부 성공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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