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결재받다 지진나면?"…자연재해에도 상사 '눈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7.11.17 06:25

광화문·여의도 등 사무실 밀집지역 진동 느꼈지만 조치 無…"지진 대피훈련 몸에 익혀야"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지난 15일 오후 2시29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 회사 사무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자리에 앉으려던 3년차 사원 김모씨(30)는 정적을 깨는 긴급재난문자 소리에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동료 직원 한 명이 "뭐야, 포항에서 지진난거네"라고 말하는 찰나, 김씨 몸이 진동으로 바르르 떨렸다. 생전 처음 느낀 지진에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지만, 부서장은 "신경쓰지 말고 일들 하라"고 말했다. 김씨는 "큰 지진이었다면 대피해야 할 수도 있었을텐데 다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상사 눈치를 보며 일만 했다"며 "오후 내내 불안한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강진을 계기로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 지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항 지진에 이례적으로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광화문·강남·여의도 직장인들까지 진동을 느꼈지만 대응책을 몰라 아무일 없던 듯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분위기다. 지진 대응 훈련을 일상화 해야 향후 대형 지진이 왔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포항 지진 발생 당시 전국 각지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던 직장인 50명을 취재한 결과 응답자의 88%(44명)은 "포항 강진의 여파로 진동을 느꼈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일을 계속했다"고 답했다. 나머지 12%(6명)만 "진동이 멈춘 뒤 건물 밖으로 나왔다"고 답했다.

진동을 느꼈음에도 일했다고 답한 직장인들 중 90%(40명)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두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무서움을 느꼈던 응답자의 55%(22명)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라고 답했고, 32.5%(13명)는 "상사 눈치가 보여서"라는 의견을 보였다. 나머지 12.5%(5명)는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여의도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씨(35)는 "사무실 직원 대다수가 수초간 진동을 느꼈지만 '지진 났느냐'고 잠시 웅성거리더니 자기 일만 했다"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진동에 불안해 메신저로만 대화를 주고 받았다. 누구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남에 위치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윤모씨(35)도 "불안해서 책상 밑으로 숨거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다들 그냥 일하는 분위기라 유난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참았다"며 "정말 서울 한복판에서 강진이 나면 큰일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2017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의 하나로 실시된 지진대피훈련에서 118층 전망대에 있던 시민들이 몸을 낮춘채 피난계단을 이용해 대피하고 있다./사진=뉴스1

직장인 대다수는 "지진 발생시 대피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재난시 계단으로 대피해야한다는 등의 정보를 알고 있는 정도다. 강진이 발생했을 때 진동이 어느정도 있을 때 움직여야 하는지, 아니면 멈추고 이동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 매뉴얼에 따르면 통상 지진 진동이 있을 때는 책상 밑에 숨는 등 머리를 보호하고, 진동이 끝나면 전기와 가스를 차단한 뒤 계단을 통해 밖으로 대피하도록 돼 있다.

정부 대책 마련 등에서도 직장인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불만도 많다. 포항 지역 직장인 서모씨(30)는 "학교들은 정부 지시로 휴교라도 하지, 직장인들은 지진이니 뭐니해도 다 출근해야 했다"며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들도 지진 대응 훈련이 몸에 밸 정도로 일상화 돼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회사에서 지침이나 사내 방송 등을 할 때 지진 대응 매뉴얼을 잘 홍보하고, 이어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야한다"며 "머릿 속으로만 알면 지진이 났을 때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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