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은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없는 기계였고 따라서 말도 못하고,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빛의 파장을 보고 이를 붉은색으로 느낄 수도 없는 존재였다. 개를 발로 찼을 때 “깨갱” 하는 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시계를 밟았을 때 “뿌직” 소리가 나는 것과 같았다. 데카르트의 후계자 중에선 개의 사지를 널빤지에 못으로 박아 개를 산 채로 해부하면서 피의 순환을 논의하며 즐거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기계에 불과한 개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고 확신했다.
19세기 중엽에는 진화론이 나오면서 인간-동물의 연속성이 강조됐다. 찰스 다윈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했고 따라서 인간에게 동물성이 있는 만큼 동물도 인간이 지닌 소위 ‘인간성’의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윈이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동물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동물 세상에도 협동과 이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더 악화한 면이 있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개싸움이나 닭싸움을 즐기진 않았지만 육류소비 증가에 따른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이 대규모로 확산했다. 공리학이 발달하고 제약·화학산업이 발전하면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축산, 도축, 실험동물 사용과 관련해 여러 종류의 윤리강령이 만들어지고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다시 천명됐지만 인간의 경제적 이윤 앞에서 혹은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는 대의 앞에서 동물은 희생돼도 되는 존재였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도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말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공장식 축산이 ‘태양을 전혀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동물을 사육하며 이런 축산은 ‘동물을 인간을 위한 양식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길러낸다고 비판했다. 책은 성공적이었고 영국 정부는 동물복지자문위원회를 만들어 해리슨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이 위원회의 활동은 1968년 ‘농업법’ 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해리슨의 ‘동물 기계’는 공장식 축산의 잔인성에 대한 세상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녀의 비판 곳곳에는 인간중심주의가 잔존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공장식 축산이 고기의 맛과 질을 떨어뜨리고 이렇게 생산된 육류가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독자 중에선 해리슨을 넘어 더 급진적인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해리슨의 영향을 받은 작가 브리지드 브로피(1929~1995년)는 1965년 선데이타임스에 ‘동물 권리’(Rights of Animals)란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이 글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동물의 노동을 이용하고, 동물을 먹고, 입고, 희생양으로 삼고, 과학실험에 동원하는 식의 일방적인 착취관계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선악에 대해 숱한 철학적 고민을 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노예제의 비도덕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듯이 지금 우리도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억압에 내재한 비도덕성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룹 구성원들이 토론하면서 ‘동물권’(animal rights)에 대한 책을 편집하고 있을 때 호주 멜버른대학교 철학교수 피터 싱어(1946년~)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새롭고 흥미로운 연구주제를 물색하던 싱어는 자연스럽게 ‘동물권’을 주장하는 그룹과 어울렸다. 옥스퍼드그룹 구성원들은 싱어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질문을 했다.
싱어는 이들의 논문을 읽고 논평을 해주면서 동물의 평등권, 생명권 등에 눈을 떴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옥스퍼드그룹의 글을 모은 책은 1971년 ‘동물, 인간, 도덕’(Animals, Men and Morals)이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싱어와 옥스퍼드그룹 구성원들은 책이 세상에 큰 충격을 던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책은 대중적이지 않아 이 주제에 본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읽히지 않았다.
“우리는 흑인 해방, 게이(gay) 해방, 그리고 다른 여러 운동에 친숙하다. 여성 해방과 함께 몇몇 사람은 우리가 해방의 마지막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어 싱어는 “이런 일련의 해방운동에서 아직 끌어안지 못한 동물 해방이 남아있다”며 책을 소개했다.
동물 해방은 인간이 다른 종을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고 보는 태도를 중단하고 이를 도덕적 유린으로 보는 태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인간에게 국한된 자유, 평등, 박애의 위대한 원리를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싱어의 서평은 미국 지성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서평을 확장해 ‘동물 해방’(1975년)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영원히 바꿔버린 책으로 평가됐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동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례로 헨리 스피라(1927~1998년)는 싱어의 책을 읽고 400개 넘는 운동단체를 규합해 동물실험에서 동물의 생명과 권리가 침해되고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화장품의 피부 독성을 실험하기 위해 토끼의 눈에 화학물질을 발라 토끼를 장님으로 만드는 화장품회사 레블론(Revlon)을 공격했다. 이런 비판은 동물실험을 하는 대학과 연구소에 동물실험의 오용을 심사하는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설립된 계기가 됐다.
자연의 무생물과 기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기계라고 생각한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큰 물결을 만들면서 자연과 기계에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등장했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인간을 초월하는 기술중심주의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겸손하게 공존하는 새로운 탈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이 제창됐다. 포스트휴머니즘 사상의 토대 중 하나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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