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동물도 감정있다, 고로 공존해야한다"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2017.11.18 03:47

<8> 동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의 출발과 탈인간 세계관의 등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란 명언을 남긴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복잡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같은 자동 기계장치를 만들 듯이 신이 만든 자동 인형이 바로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체는 마치 동물처럼 복잡한 기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정신은 우리에게 이성과 의지를 가능케 했다. 사람이 말을 하고, 자극을 아픔으로 느끼고, 빛의 파장을 보고 붉은 노을로 인지하는 것은 이런 정신의 작용이었다. 데카르트의 정신은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마음이자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영혼이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은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없는 기계였고 따라서 말도 못하고,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빛의 파장을 보고 이를 붉은색으로 느낄 수도 없는 존재였다. 개를 발로 찼을 때 “깨갱” 하는 것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시계를 밟았을 때 “뿌직” 소리가 나는 것과 같았다. 데카르트의 후계자 중에선 개의 사지를 널빤지에 못으로 박아 개를 산 채로 해부하면서 피의 순환을 논의하며 즐거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기계에 불과한 개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고 확신했다.

동물의 기계적 구현. 18세기 프랑스 엔지니어 보캉송의 “똥싸는 오리” 자동인형. 오리가 음식을 먹고 똥을 싸는 것을 모사(simulate)했다. (Wikipedia “Digesting Duck” 항목)
진화론이 나오기 이전에도 동물이 기계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의 이론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 콩도르세는 개를 키우면서 개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가 거짓말이라고 확신하게 됐고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을 비판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동물이 말을 하는가, 생각하는가보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중엽에는 진화론이 나오면서 인간-동물의 연속성이 강조됐다. 찰스 다윈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했고 따라서 인간에게 동물성이 있는 만큼 동물도 인간이 지닌 소위 ‘인간성’의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윈이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동물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동물 세상에도 협동과 이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실망하고 골난 침팬지.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1872) 중에서.
19세기에도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존재했다. 특히 동물에게 잔인한 행위를 하는 것은 인간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입어 동물에게 잔인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더 악화한 면이 있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개싸움이나 닭싸움을 즐기진 않았지만 육류소비 증가에 따른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이 대규모로 확산했다. 공리학이 발달하고 제약·화학산업이 발전하면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축산, 도축, 실험동물 사용과 관련해 여러 종류의 윤리강령이 만들어지고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다시 천명됐지만 인간의 경제적 이윤 앞에서 혹은 인간의 생명을 구한다는 대의 앞에서 동물은 희생돼도 되는 존재였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도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말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루스 해리슨의 『동물 기계』(1964)의 표지.
1961년 영국 작가 루스 해리슨(1920~2000년)은 우연히 ‘동물에 대한 모든 잔인함에 대항하는 십자군 전사’라는 조직에서 발행한 팸플릿을 보게 됐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공장식 축산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해리슨은 공장식 축산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던 중 여성 작가이자 생물학자였던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1962년)을 출판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해리슨은 카슨이 환경문제를 폭로한 것처럼 공장식 축산의 잔인성을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동물 기계’(Animal Machines, 1964년)로 출판했다. 해리슨은 카슨에게 책의 서문을 부탁했고 카슨이 그런 것처럼 책을 내면서 이 내용을 신문에 연재해 책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그녀는 공장식 축산이 ‘태양을 전혀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동물을 사육하며 이런 축산은 ‘동물을 인간을 위한 양식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길러낸다고 비판했다. 책은 성공적이었고 영국 정부는 동물복지자문위원회를 만들어 해리슨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이 위원회의 활동은 1968년 ‘농업법’ 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해리슨의 ‘동물 기계’는 공장식 축산의 잔인성에 대한 세상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녀의 비판 곳곳에는 인간중심주의가 잔존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공장식 축산이 고기의 맛과 질을 떨어뜨리고 이렇게 생산된 육류가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독자 중에선 해리슨을 넘어 더 급진적인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해리슨의 영향을 받은 작가 브리지드 브로피(1929~1995년)는 1965년 선데이타임스에 ‘동물 권리’(Rights of Animals)란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이 글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동물의 노동을 이용하고, 동물을 먹고, 입고, 희생양으로 삼고, 과학실험에 동원하는 식의 일방적인 착취관계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선악에 대해 숱한 철학적 고민을 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노예제의 비도덕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듯이 지금 우리도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억압에 내재한 비도덕성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브리지드 브로피와 그녀의 대표 소설 중 하나인 <핵켄펠러의 원숭이>. 로켓 발사에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원숭이를 구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리처드 라이더(1940년~)는 영국 옥스퍼드에 위치한 정신병원에 소속된 임상심리학자였다. 그는 해리슨의 책과 브로피의 기고문에 자극을 받아 과학실험에서 너무 많은 동물이 잔인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폭로한 글을 텔레그래프(1969년)에 기고했다. 라이더는 인간에 의한 동물의 학대와 착취를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명명했다. 이 글을 읽은 브로피는 그를 옥스퍼드대학원에서 철학을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과 연결해줬다. 철학도들은 관념적인 철학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적 탐구주제를 찾다가 자연스럽게 세간의 관심사였던 동물에 대한 착취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옥스퍼드그룹’으로 불렸다.

그룹 구성원들이 토론하면서 ‘동물권’(animal rights)에 대한 책을 편집하고 있을 때 호주 멜버른대학교 철학교수 피터 싱어(1946년~)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새롭고 흥미로운 연구주제를 물색하던 싱어는 자연스럽게 ‘동물권’을 주장하는 그룹과 어울렸다. 옥스퍼드그룹 구성원들은 싱어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질문을 했다.


싱어는 이들의 논문을 읽고 논평을 해주면서 동물의 평등권, 생명권 등에 눈을 떴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옥스퍼드그룹의 글을 모은 책은 1971년 ‘동물, 인간, 도덕’(Animals, Men and Morals)이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싱어와 옥스퍼드그룹 구성원들은 책이 세상에 큰 충격을 던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책은 대중적이지 않아 이 주제에 본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읽히지 않았다.

옥스퍼드 그룹 멤버들이 편집, 출판한 『동물, 인간, 도덕』 (1971).
연구년을 끝내고 호주로 돌아간 싱어는 책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했다. 싱어는 미국의 서평지 가운데 수준 높은 교양인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잡지인 ‘뉴욕리뷰오브북스’(NewYork Review of Books) 편집자와 접촉해 ‘동물, 인간, 도덕’의 긴 서평을 썼다. 매우 도발적인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이라는 제목의 서평이었다.

“우리는 흑인 해방, 게이(gay) 해방, 그리고 다른 여러 운동에 친숙하다. 여성 해방과 함께 몇몇 사람은 우리가 해방의 마지막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어 싱어는 “이런 일련의 해방운동에서 아직 끌어안지 못한 동물 해방이 남아있다”며 책을 소개했다.

동물 해방은 인간이 다른 종을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다고 보는 태도를 중단하고 이를 도덕적 유린으로 보는 태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인간에게 국한된 자유, 평등, 박애의 위대한 원리를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싱어의 서평은 미국 지성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서평을 확장해 ‘동물 해방’(1975년)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영원히 바꿔버린 책으로 평가됐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동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례로 헨리 스피라(1927~1998년)는 싱어의 책을 읽고 400개 넘는 운동단체를 규합해 동물실험에서 동물의 생명과 권리가 침해되고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화장품의 피부 독성을 실험하기 위해 토끼의 눈에 화학물질을 발라 토끼를 장님으로 만드는 화장품회사 레블론(Revlon)을 공격했다. 이런 비판은 동물실험을 하는 대학과 연구소에 동물실험의 오용을 심사하는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설립된 계기가 됐다.

헨리 스피라가 주도해서 실린 <뉴욕 타임즈>의 전면 광고. “아름다움을 위해서 레블론은 얼마나 많은 토끼를 장님으로 만드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동물에 대한 이런 태도는 환경운동이 제창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결합했다. 이전에는 인간이 인간의 풍요, 복지, 생명을 위해 동물과 자연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착취를 당연히 생각했다면 이제 인간은 동물과 함께 지구를 잠깐 빌려 쓰는 존재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에서 벗어나 동물과 같은 비인간과 공존하는 탈인간중심적인 포스트휴머니즘의 세계관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의 무생물과 기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기계라고 생각한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큰 물결을 만들면서 자연과 기계에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등장했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인간을 초월하는 기술중심주의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겸손하게 공존하는 새로운 탈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이 제창됐다. 포스트휴머니즘 사상의 토대 중 하나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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