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반 호수, 그리고 악다마르 섬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2017.11.11 08:27
터키의 동부도시 반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반 호수다. 이곳은 해발 1646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터키 최대의 호수다.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고도가 설악산 대청봉(1708m)에 근접하는 셈이다. 호수를 둘러싼 호안선이 500km 정도 되는데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가 다섯 시간은 걸려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평균 깊이는 171m, 가장 깊은 곳은 451m나 된다. 물이 맑고 풍경이 아름다워서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바라본 악다마르 섬. 반 호수 한 가운데 희미하게 떠 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반 호수에 가면 들러오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섬 한가운데 있는 악다마르 섬이다. 악다마르 섬은 전설과 비극을 한꺼번에 품고 있는 섬이다. 선착장이 있는 아탈란이란 곳에서 섬까지는 4.8km. 유람선을 타고 15~20분 걸린다. 이 호수에도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로 그치는 것만은 아닌 듯, 한때는 일본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탐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섬은 가까이 가면서 바윗덩어리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길이 700m, 너비 600m의 이 돌섬은 둘레의 연장길이가 2km밖에 안 되지만,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 큰 흔적을 남겼다.

이곳에 왕궁을 지은 사람은 아르메니아 바스푸라칸 왕국의 초대 왕 기긱 1세. 915년부터 921년에 걸쳐 궁전과 성당을 지었다. 궁전은 세월 따라 지워졌지만 성당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식 명칭은 ‘성 십자가 대성당’. 수도사들은 간데없고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다. 이 성당은 1116년부터 1895년까지 아르메니아 정교회 총대주교의 대성당이었다. 1915년까지도 수도원으로 썼는데 바로 그해 이곳의 수도사들이 모두 학살되고 교회는 파괴됐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였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검은 손이 이 섬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현재 서 있는 건물은 2007년에 복원한 것이다.

악다마르 섬과 성 십자가 대성당/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악다마르 섬에는 애달픈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이 섬에 작은 왕국이 있었다. 왕에게는 타마르라는 이름의 공주가 하나 있었는데 건너편 마을에 사는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아무리 작은 왕국이라지만 공주와 평민의 사랑이라니. 전설이나 옛날이야기가 선호하는 비극의 조건을 충분히 품고 있는 셈이다.

청년은 밤이면 헤엄을 쳐 섬까지 건너와 공주와 밀회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길 수 없었다. 왕이 둘의 관계를 눈치 챈 것이었다. 어느 비바람이 거센 밤. 왕은 등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흔들었다. 공주가 부르는 것으로 안 청년은 폭풍우 속에서도 힘차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왕은 등불을 들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등불을 따라 계속 방향을 바꾸던 청년은 얼마 뒤 힘이 빠져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 타마르였다. 그 사실을 안 공주도 호수에 몸을 던졌다. 지금도 폭풍우가 치는 밤이면 아! 타마르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성 십자가 대성당이 유명한 건 외부 벽에 새겨진 부조들 덕분이다. 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사건들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벽의 맨 오른쪽에는 한 남자가 서 있고 사자 두 마리가 거꾸로 서서 발을 핥는 그림이 있다. 우상숭배를 거부했다가 사자 우리에 던져졌다는 다니엘 성인이다. 금단의 열매를 따는 아담과 이브, 사자를 죽이는 삼손, 세례 요한, 아들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 조각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 부속 교회, 기도실 등을 지나 중앙 홀로 들어가게 돼 있다. 중앙 홀의 벽에는 다양한 프레스코화들이 있다. 외부 벽이 구약이라면 내부 프레스크화들은 신약성서를 소재로 했다. 성화들이 상당부분 지워져 있는데다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 종교적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은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한 가운데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성화가 모셔져 있다.

수도사들이 수도를 하던 방들은 거의 다 무너졌다. 교회를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가슴이 시원해진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섬과 늦은 봄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알투스 산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이곳에 살던 수도사들,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에서 마음 다스리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 욕심도 미움도 한 뼘의 땅도 부질없다는 것만 진실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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