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진짜 채용비리 조사가 목적인가요?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7.11.03 04:35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결국 그만둬야 할걸요. 이게 그냥 채용비리 의혹이 아니라니까요." 며칠 전 한 금융권 인사의 말이다. 그는 "지금 이 행장은 이게 그냥 순수한 채용비리 조사냐, 그만두라는 정부 사인이냐 고민일 텐데 딱 봐도 그만두라는 얘기예요.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도 보세요."

이 인사의 말이 예언처럼 2일 실현됐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 때 우리은행의 자체 특혜채용 감찰보고서를 검찰에 넘겼다고 한지 사흘만이다. 우리은행은 사회고위층과 VIP고객 등의 채용 청탁 내용이 담긴 문건이 유출돼 결국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특혜채용이 잘못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청탁이 채용에 영향을 미쳤는지 본격적인 조사조차 시작되지 않았는데 행장까지 그만두는 사태로 비화했다. 이런 식이라면 의혹을 제기해 검찰이든 경찰이든 조사만 시작하면 일단 그 조직의 대표는 그만둬야 할 판이다. 대구은행장을 겸하고 있는 박인규 회장도 딱 그런 상황이다.

박 회장은 상품권을 구매한 뒤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으로 바꾸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지난 9월초 경찰에 입건됐다. 실제 ‘상품권 깡’을 했는지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선 시기가 문제일 뿐 박 회장의 사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말 금융감독원이 투서를 받아 조사한 결과 무혐의 판결을 내렸던 사안을 경찰이 다시 조사한다고 나선 것 자체가 그만두라는 정부의 압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고 보면 이 행장과 박 회장은 박근혜 전 정부와 인연이 있다. 이 행장은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금융인 모임 ‘서금회’의 회원이다. 박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영남대 출신인데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같은 경북 경산이 고향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고발로 자리가 위험해졌다는 점이다. 이 행장은 채용 합격자 중 청탁이 있었던 직원 명단을 내부자가 외부로 유출해 검찰 조사까지 가게 됐고 박 회장은 내부 투서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금융권이 주목하는게 이 대목이다. 전 정부와 인연이 있었던 CEO(최고경영자)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고발이 이뤄져 결국 옷까지 벗게 되는 수순이라는 것이다.


BNK금융그룹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음모론적 시각이 존재한다. 성세환 전 BNK금융 회장 겸 부산은행장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무혐의로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 갑작스럽게 주가조작 혐의로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4월 구속됐다. 성 전 회장은 보석 신청도 기각됐다가 BNK금융 이사회가 차기 회장을 선출하기로 결정한 뒤 사퇴 의사를 밝히고 6일 후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BNK금융 회장엔 정부와 친분이 있어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김지완 회장이 선임됐다. 성 전 회장이 좀더 일찍 풀려났다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금융권에선 금융공기업인 IBK기업은행은 어떻게 될지, 유독 외풍에 많이 시달렸으나 최근 내부 출신으로 회장과 은행장 인사를 마무리한 KB금융그룹은 괜찮은 건지, 내년 3월 회장 임기가 끝나는 하나금융그룹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한 금융권 인사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딨냐”며 “주인 없는 은행 CEO야 뭐로 걸든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은행 CEO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니다. 대부분은 검찰이나 경찰 조사로 소송까지 가게 되면 엄청난 소송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위에서 사인이 오면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재빨리 눈치 채고 옷 벗는게 상책이란 얘기다.

채용비리는 철저히 조사해 척결하는게 맞다. 하지만 금융협회장에 뜬금없이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70세 때론 80세 가까운 옛 고위 관료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모든 게 있는 그대로의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자꾸 음모론이 떠오르는 금융권을 보면서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뭐가 있겠지’ 하는 냉소적인 마음이 생기는 심란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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