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을 보게 해줘요." 현욱을 만나다

머니투데이 김초엽  | 2017.11.03 07:07

[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11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현욱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민은 현욱의 집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괜찮겠어?”

같이 가주겠다는 준호의 제안에 지민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든 대답하지 않든 그곳으로 가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아빠가 살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이사했던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외곽의 오래된 도로를 달려 현욱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현욱에 대한 기억은 엄마보다도 더 적게 남아 있다. 그는 늘 일을 하느라 바빴다. 엄마의 상태가 악화된 이후에는 그녀를 돌보기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편을 택했다. 지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돈을 버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지민이나 유민에게 무관심 이상의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지민은 현욱을 없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집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방향을 돌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인종을 누른 다음에는 목이 바짝 말랐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도 혹시 만나는 것을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문이 열렸다.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나이 든, 그리고 움푹 팬 눈주름을 가진 남자가 지민을 쳐다보았다. 현욱은 지민을 보고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연락을 거부하긴 했으나,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밀어낼 생각도 없는 듯했다. 한국을 떠났던 이후로 그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만난 현욱은 훨씬 노쇠해 보였다.

현욱은 거실로 지민을 데려갔다. 집은 좁고 어두웠다. 혹시 다른 사람과 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혼자 사는 것 같았다.

소파에 앉은 지민에게 현욱이 툭 내뱉듯이 물었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지민은 답하지 않았다. 현욱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엌에서 티백 차를 한 잔 내왔다. 그는 여태까지 의도적으로 지민을 피해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머그잔에서 올라오던 김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목이 타는 기분이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을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결국 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서관에 갔는데, 엄마의 인덱스가 지워져 있었어요. 당신이 그랬죠?”

“그랬지.”


생각보다도 순순히 시인해버린 탓에, 지민은 울컥 화를 낼 타이밍을 놓쳤다. 지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바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를 그렇게 혼자 둔 것도 모자라서….

“그건 네 엄마의 부탁이었다.” 현욱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지민은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원래는 마인드 업로딩도 완강히 거부했어.”

현욱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인덱스를 지운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의식이 남는 건 아니라고 설득했지. 마인드를 남기는 대신 너희 엄마는 세상에서 잊히는 걸 조건으로 건 거다. 그게 마지막 부탁이었으니, 그대로 해줬을 뿐이다.”

너희 엄마, 라는 말이 유난히 따갑게 들려왔다. 현욱이 그녀를 자식들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대한 적이 예전에는 있었을까. 있었더라도 그건 아주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엄마를 집에 두고 그렇게 밖으로만 나돌지는 않았겠지. 지민의 엄마에 대한 감정은 체념이었지만, 가족을 버리다시피 한 아빠에 대한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도 이제는 오래된 일이다. 그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당신이 엄마를 마인드로 남겼는지, 그래놓고 다시 연결을 끊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엄마를 만나봐야겠어요.”

지민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현욱이 왜 굳이 사랑하지도 않았던 엄마를 마인드로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변덕이었을 수도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지민은 대신, 엄마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현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는 유품을 보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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