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상자를 꺼내다…세계에서 분리된 엄마

머니투데이 김초엽  | 2017.10.27 12:19

[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9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그날 퇴근해서 집에 있던 엄마의 유품 상자를 꺼냈다. 엄마가 죽은 이후에 현욱이 보낸 상자였다.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다는 것만 알았지, 무엇이 들어있는지 제대로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이제야 이 상자를 열어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마인드 업로딩이 과거의 장례 문화와 봉안당을 대체한 이후로, 유품을 납골함 옆에 두거나 소각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대개는 간직할 가치가 있는 물건들만 남기고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욱이 굳이 상자에 가득 담길만한 물건들을 보내온 이유는 아마 어떤 물건이 남아있는지 제대로 살펴볼 의지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자에 담긴 물건들은 대개 엄마가 살아있던 시절에 사용하던 물건들이었다. 코트와 모자, 니트 스웨터를 보자 엄마가 죽은 계절이 겨울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때 지민은 지구의 남반구에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다가 한 장의 부고 소식을 메일로 받았을 때는, 엄마에 대한 어떤 원망도 그리움도 다 지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이곳에서 엄마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고 있자 다시 복잡한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몇 개의 옷과 시계, 낡은 장신구들을 꺼내면서도 지민은 무언가 의미 있는 물건 하나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품들을 거의 박스 바닥이 보일 때까지 정리하면서, 지민은 그 안에 엄마를 특정할만한 물건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을 더듬었을 때, 엄마가 가끔 책을 읽던 것이 생각났다. 대부분은 전자책이었으니 유품으로서의 의미는 없다. 게다가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둘도 아닐 터였다. 엄마가 또 무엇에 관심이 있었더라.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 지민에게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이었고, 자라면서 엄마를 또 다른 개인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무렵에 엄마는 이미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지민과 유민을 낳기 전에는 어땠을까? 지민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무엇을 했을까. 지민이 기억하는 한 언제나 엄마는 지민의 엄마였으므로, 그 예전의 김은하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지민의 기억 속 엄마는 늘 집에 있었다. 병이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지민과 유민이 손이 많이 가는 나이였으니 그랬을 테고, 둘 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엄마의 병이 악화되어 집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 단말기도 어느 순간부터 쓰지 않았고, 일기를 쓰거나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별다른 취미 생활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녀가 남긴 물건은 인간의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 중 일부일 뿐이다.

엄마가 특별히 지민에게 남긴 물건도 없었다. 지민이 아주 어렸을 때 입던 배내옷 같은 것들이 두 벌 정도, 스튜디오에서 찍은 듯한 어색한 미소의 가족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이것들조차도 그냥 우연히, 정리하지 않고 남아있었을 뿐이다.

엄마는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고, 집 밖과 가족 외에는 어떤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버린, 이제는 없는 사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민은 해외에 들고 나갔다가 준호와 결혼을 하면서도 가지고 온 잡동사니가 든 상자를 모두 샅샅이 뒤졌다. 엄마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지민의 과거 흔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장에라도 집을 떠나고 싶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몰래 친구들에게 쪽지를 보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드물게 종이를 수업에서 사용하던 때였다. 사진과 영상을 백업해둔 드라이브도 연도별로 정렬해서 찾아보았다. 아직 엄마가 살아있던 시기는, 엄마를 전혀 찾아가지 않던 때였으므로 큰 의미는 없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과 영상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디지털 자료의 특성상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쉽게 소실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마 그 시절이 기록으로 남길 만큼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민은 가슴이 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민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엄마의 흔적은 왜 단 하나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지민이 수천 장이 넘는 사진을 넘겨보고, 어릴 때 썼던 일기 노트 파일과 편지들, 이따금 찍은 영상을 돌려보는 동안 엄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민이 혼자 사진을 찍을 때 언뜻 옆에 보이는 모습, 꾸며낸 가족사진, 영상에 나오는 목소리. 그게 전부였다. 지민의 일기에조차 엄마에 대한 원망 어린 짤막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이 다였다.

“너, 혹시 엄마 유품 가지고 있어?”
지민이 유민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동생의 목소리는 잔뜩 피곤한 듯했다.
“나한테 그런 게 있겠어, 누나?”
유민은 그런 질문을 들은 게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민보다도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갔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화면 앞에 선 지민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자, 유민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번 찾아볼게.”

“있지, 유민아.”
“응?”
“엄마가 하나도 없어.”
지민의 말에, 유민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지민은 엄마의 사라진 인덱스를 생각했다. 왜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멈춘 것 같은 공기가 홀로그램 화면을 사이에 두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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