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표류하는 초대형IB에 대한 우려

머니투데이 송정훈 기자 | 2017.10.23 17:32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소는 누가 키웁니까." 최근 만난 금융전공 한 교수가 초대형IB(투자은행) 제도와 관련해 한 말이다. 과거 한 개그맨의 유행어를 빗대 지금처럼 제도가 계속 미뤄져 규제 일변도로 흐르면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도입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처럼 소리만 요란한 찻잔 속 태풍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 3분기 시행 예정인 초대형IB 제도는 최근 인가 작업이 계속 표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서 규제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대형증권사의 초대형IB 제도 인가 예정시기를 다음 달 이후로 다시 연기했다. 당초 올 2분기에서 3분기로 연기한 후 계속 미루고 있다. 업계에선 최근 국정감사를 계기로 초대형IB가 은행권과 규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인가가 지연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정치권에선 초대형IB가 대형 증권사에 사실상 은행의 고유업무인 기업대출을 전면 허용하는데도 은행법 규제를 받지 않아 과도한 규제 완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이 초대형IB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의식해 인가 시 기존 대주주 적격성에 건전성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했다.

초대형IB 제도는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 관련법 개정이 당초 예정시기인 지난해 12월보다 5개월이나 늦어진 지난 5월에야 마무리됐다.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초대형IB의 자산운용 등 규제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초대형 IB의 부동산 관련 자산 투자한도를 수탁금의 30%까지로 제한했다. 초대형IB의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 유동성 비율 등 규제도 새로 추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초대형IB 방안은 증권업계 내부에서 세부기준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여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정도 지연된 8월에 발표됐다. 초대형IB 대상이 되는 자기자본 기준을 놓고 자본 규모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곳은 자본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규모가 큰 곳은 내심 자본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며 팽팽히 의견이 갈린 것이다.


초대형IB 제도는 자본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가 새로운 성장동력인 중소벤처기업에 대규모 모험자본을 공급해 혁신기업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경제 회복에 기여한다는 게 도입 취지다.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은행과 달리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대형 증권사의 대규모 자본을 혁신기업으로 흘러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사가 혁신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험자본을 공급해야 할 초대형IB 제도가 시행도 하기전에 계속 시행이 지연되고 불필요한 규제가 만들어지면서 '누더기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실패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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