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며 이성과 교제하는 '안전연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 취업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자사회원 63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362명(57%)이 '데이트폭력이나 그로 의심되는 일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일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이는 총 8376명에 달했다.
◇"집주소, 애인은 모르게"…'데이트폭력 위험 체크리스트'도 등장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연인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진 일들도 꺼려진다는 반응이다. 대학생 박서정씨(24)는 "기사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무서운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교제 초반엔 남자친구에게도 선을 긋게 된다"며 "얼마전 남자친구가 외국서 선물을 보내준다며 주소를 물었지만, 아직 말하는 게 싫어서 직접 달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신체·언어적 폭력을 당할 때에 대비해 녹취·녹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데이트폭력을 당해 경찰에 신변보호조치를 요구하거나 고소할 경우 중요한 증거로 쓰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정모씨(28)는 "자동으로 통화를 녹음해주는 앱을 사용하고 있다"며 "혹시 연인과의 대화 중 언어 폭력을 당할 경우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혹시 모를 피해를 당했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성병검사·백신접종 요구↑…"달라진 남녀관계 탓"
여성만 맞으면 된다고 여겨져온 자궁경부암 백신을 연인이 함께 접종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기존엔 남성은 비뇨기과에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가운데 '가다실'(자궁경부암 백신의 한 종류) 한가지만 맞을 수 있었지만, 남성 접종자들의 관심이 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7월부터 대표적 자궁경부암 백신인 '서바락스'의 남성 접종도 허가해 선택의 폭을 늘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을 데이트폭력에 대한 불안감과 달라진 남녀관계에서 찾는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계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남녀관계도 덜 솔직해지고 조심스러워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남녀가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관계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성인과 성인 간의 보다 평등한 관계로 인식된다"며 "서로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요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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